에세이
Whatever
Hans · 2024. 1. 30.

2003년, 18살
난 뭐 꿈도 없고 목표도 없다. 아니면 꿈이 너무 많고 목표도 너무 많거나. 그림도 잘 그리고 성적도 잘 나오니까 선생들은 예뻐한다. 얌전하고 울타리도 치지 않으니 교우관계도 좋고 학급 임원도 종종 했다. 이렇게 1-2년만 잘 하면 연대에 가겠지. 정치외교 같은 거 공부하고 아나운서 같은 거 하고 싶기도 하다. 지랄. 지겹고 지치고 그만두고 싶다. 지난 여름 신촌 신나라 레코드 스피커에서 나오던 그 노래가 계속 혀끝에 맴돈다. 제목이라도 물어볼 걸 그랬다.
5월 중간고사 기간. 집을 나왔다. 가본적 없는 강남을 며칠 걸어다녔다. 돈이 떨어져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원동기 면허가 없어서 시급을 깎는 조건으로 시작했다. 시간당 1900원. 의심스럽게 보는 사장에게 집은 천안이고 22살이라고 했다. 사실 천안이 어디인지도 모른다. 그냥 먼 곳 같았다. 영업이 끝나면 오토바이를 탈 수 있어서 좋았다. 적당히 타다가 가게 앞에 세워놓으면 사장도 모른 척 해줬다. 밤에 강변을 달릴 때면 한해 전 여름, 에어컨 쐬러 들른 신나라 레코드에서 나오던 그 노래를 버릇처럼 흥얼거렸다. 제목도 모르는 노래. 기억나는 멜로디 몇소절에 내 마음대로 가사를 지어 불렀다. 잊지 않으려고. 그렇게 오토바이를 타고 한강다리를 건너다녔다. 지그재그.
2004년 19살
병실은 12층에 있었다. 24시간 돌아가는 온풍기는 온 병동을 쉴틈없이 건조한 열풍으로 채웠고 그덕에 헐어버린 코속에서 피가 자주 흘러나왔다. 그래도 이번 병원은 그 전 병원처럼 철창으로 창문을 막아놓지는 않았다. 휴게실 한쪽은 전면 유리로 된 통창이었다. 그 앞에 서면 건물 옥상 끝에 선 듯했다. 요를 뒤집어 쓰고 종일 벽을 보고 누워있다가 자정이 넘으면 혼자 병실에서 나왔다. 발소리 없이 휴게실로 가 귀에 이어폰을 끼고 라디에이터 위에 걸터앉아 통창 너머 아파트 촌을 바라보았다. 몇집이나 불이 꺼지는지를 셌다. 그리고 왜인지 늘 박하사탕을 들었다. 삼촌이 가져다 준 엠피쓰리에 그나마 들을만한 곡이 그거였다. 잘 먹어보지도 않은 박하사탕. 폐쇄병동 안. 마르고 더운 공기. 꺼지지 않는 온풍기 회전 소리. 한겹 유리창 너머 박하맛 겨울 공기가 그리웠다. 몇분 후면 간호사는 어김없이 다가와 내게 수면제가 더 필요한지 물을 것이었다. 수면제말고 박하사탕 처방이 필요한 밤들이 이어졌다.
2008년 24살
유럽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 모은 350만원은 술 몇번 마시고 옷 몇 벌 사니까 바닥이 났다. 내 기억으로는 한 15만원 정도 쓴 것 같은데 남은 돈이 15만원이었다.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접시를 닦고 똥때묻은 화장실을 청소했다. 악착같이 외운 어려운 이름의 메뉴들을 아빠 차 끌고 데이트 온 또래들 앞에서 무릎꿇고 주문받는 패밀리 레스토랑 일을 두달 더 했다. 그래도 또 술마시고 옷 몇 벌을 샀고 이번에 남은 돈은 150. 인도가 가장 쌌으므로 선택지는 인도밖에 없었다. 오르차라는 마을에 도착하니 우기에 불어난 강물 때문에 다리를 되건널 수 없어 좁은 마을에서 일주일을 보냈다. USB 충전 단자의 엠피쓰리를 충전할 곳은 없었다. 빗방울 떨어지는 숙소 처마 아래에서 설탕넣은 짜이를 마시는 동안 5년 전 신나라 레코드에서 들었던 그 노래가 또 저절로 목구멍에서 흘러 나왔다. 지난 5년새 습관이 되어버린 그 전주부분의 휘파람. 같이 짜이를 마시던 옆방 영국남자가 내 휘파람 소리에 눈을 홉뜨고 나를 보고 말했다. 오아시스? 왓에버?
2달 후 인천공항에 도착해 수하물 저울에 몸무게를 재니 14킬로그램이 빠져 있었다. 기다시피 집에 도착해 씻지도 않고 오아시스 앨범들을 뒤졌다. 왓에버라는 곡은 없었다. 검색 끝에 스탠드얼롱 싱글이란 것을 알았고 어느 팬 사이트에서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노래를 찾아냈다. 한 모금의 오아시스 샘물이었다. 노래가 끝나기 전 기절했다.
2009년 25살
대학을 그만둔 후 취직하고 퇴사하고 연애하고 헤어지고 아르바이트 하고를 3번정도 반복했다. 그 무엇도 3개월 이상 하지 못했다. 예술학과 중퇴가 할만한 일은 너무 적거나 많았고, 내가 좋아 미치겠다던 사람들은 이주일이 지나면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아르바이트는 적당히 돈되고 쉽지만 난 뭔가 더 위대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취직했고 다시 그만뒀다. 그러는 사이 밤이 길어졌다. 담장을 치는 꽃그림자도, 허물만 남은 매미가 방충망에 아직 매달려 있는 것도, 낙옆을 태운 재냄새가 흩어지는 것도, 첫눈이라고 불러주기 싫은 흰부스러기 몇 개가 하늘에서 내리는 걸 본 것도 모두 밤에 일어난 일이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이 있었다. 밤낮 붙어지내던 동기 두놈 중 한놈은 문예지에 첫소설이 실렸고 다른 하나는 유학을 갔다. 나는 부엌 옆방에서 밤들을 보냈다. Keren Ann의 노래가 라디오에서 단골로 나왔다. 나는 아무곳에도 가지 않았다.
2013년 29살
식탁등 하나 켜놓고 엄마와 새벽 세시에 동치미 국수를 먹었다. 1월 1일 이었다. 후루룩 소리도 없이, 맛이 어떠냐는 소리도 없이 그냥 각자 조용히 먹었다. 첫눈처럼 조용했고 또 그렇게 조용히 아침이 왔다. 꾸려놓은 짐이래봐야 책상, 옷, CD, 책과 겨울이불 그리고 잡동사니 몇박스가 전부였다. 스무아홉해를 한 집에서 산 것치고는 빌려놓은 트럭이 민망할 정도의 양이었다. 트럭 보조석에 탈 때 엄마가 빨간 손수건으로 싼 길죽한 것을 내 코트 주머니에 찔러 넣고 뒤돌아 울었다. 트럭을 타고 가는 동안 색바랜 Be the Reds 손수건을 펼치자 놋수저 한벌이 나왔다. 아버지가 남기고 가서 내가 쓰던 수저였다.
빚덩어리 새집으로 독립한 첫날 주민센터 앞에 버려진 시디장을 주어왔다. 중학교 때부터 모은 음반이래봐야 책장 한칸 정도지만 그마저도 수납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시디장이었다. 바닥에 널려있는 정리하지 못한 음반들 중 가장 안 슬플 것 같은 앨범을 플레이에 걸었다. ABBA GOLD. 엄마 거였다.
2019년 35살
남자친구의 부모님 댁에 초대받아 갔다. 달리 드릴 선물이 없어 일하고 남은 재능으로 초상화를 그려드렸는데 바로 그날 액자를 만들어 계단 벽 가족들 사진 사이에 걸어주셨다. 그의 가족들은 친절하고 다정했지만 말수는 적었다. 차라리 편했다. 말없이도 좋은데 굳이 소음을 더할 필요는 없었다. 우린 식탁등 하나 켜놓고 지역의 전통 크리스마스 쿠키를 먹으면서 이르게 오는 북구의 겨울밤을 바라봤다. 창밖으로 마을의 조촐한 크리스마스 행진이 지나갔다. 내가 낙서를 하는 동안 그의 아버지는 그날 신문의 구독자 퀴즈를 풀었다. 그러다 말하셨다. 그 가수 이름이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그 캐나다 가수의 이름이. 그 이름만 알면 그날의 퀴즈를 모두 맞추는 건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조니 밋첼. 그 가수 이름 조니 밋첼이에요. 몇 개의 힌트를 듣고 내가 말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 왼쪽에 앉은 남자친구와 그의 어머니가 쓰러질 듯 웃기 시작했고 오른쪽에 앉은 그의 아버지는 얼굴이 빨개지며 웃음을 삼켰다. 그들이 박장대소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묻지 않고 그냥 따라 웃었다. 그의 동생 역시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눈썹을 팔자로 모으고 웃었다. 모르겠다. 조니 밋첼이 왜 웃긴지 모른채 그냥 웃었다. 내 양옆에서 웃으니 웃을 수 밖에 없었다.
2023년 39살
마감을 하고 작업물을 보내고 2주만에 소파에 눕는다. 오후 3시. 건조하고 서늘한 소파천에 종아리를 비벼본다. 아릿하다. 어릴적 겨울이불에 허벅지를 비비듯. 스르륵
방은 검푸르고 들숨은 차다. 눈을 뜬 건지 감은 건지 알 수 없다. 아직 오늘인지 이미 자정이 지났는지, 일어나야할지 말아야할지 모른다. 모르고 싶다. 일어나 저녁을 짓겠다는 생각도 운동을 가겠다는 결심도 모두 멀고 막막하기만 하다. 여행지에서의 첫날처럼 어느 곳, 어느 일상에도 내 손이 닿아보지 못한 것 같은 방안의 낯선 풍경. 이런 귀한 낮잠은 가끔 온다. 저녁을 먹고, 운동을 가고, 샤워를 한 후 보지도 않을 영화들을 골라 리스트에 담는 저녁을 삭제시킨 선물 같은 낮잠. 반쯤 뜬 눈으로 정수리 너머 거꾸로 걸려있는 달을 본다. 어느 곳을 흘러가는지 모르는 유빙 위에서 깨 노란달을 바라보며 아무 생각도 아닌 생각을 한다. Of monsters and men, yellow lights
HANS / 일러스트레이터, 편집 디자이너
일하고 운동하고 여행다니면서 조용히 알차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별난 취향이나 고집은 없고요, 그냥 되면 되는대로,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