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 인생의 짧은 헤비메탈 여정
서근범 · 2024. 7. 8.
나는 왜 메탈에 끌렸는가?
음악을 귀에 달고 산지 26년 정도 된 것 같다. 26년 이란 시간은 그저 매체에서 들려오는 음악을 수동적으로 들은 게 아니라, 내가 원하는 음악을 찾아듣고 스스로의 취향이라는 것을 개발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계산한 것이다. 보통 ‘디깅’이라는 말은 음반 구입에 쓰는 말이지만 좋아하는 음악을 능동적으로 찾아간다는 의미가 같이 통한다면 내가 음악을 디깅 하기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즈음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헤비메탈을 처음부터 탐구했던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엔 대중적인 보이밴드나 팝아티스트 음악을 들었다-그것밖에 보이는게 없으니까-. 기억나는 뮤지션이나 팀은 Back Street Boys나 Hansons 정도…. Michael Jackson 같이 삼척동자도 다 아는 뮤지션은 제외다. 예수, 부처를 조금 안다고 해서 내가 그들의 신자라는 말은 아니지 않는가… 그럼 나의 메탈 입문에 영향을 준 뮤지션은 누구인가? 정확한 나의 메탈 입문 제1호 밴드는 미국팀 이지만…. 나의 감각 혹은 ‘뇌’가 ‘메탈 사운드’라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한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와 HOT의 ‘열 맞춰’였던 것 같다. 의외인가? 심지어 우리 에쵸티는 1세대 아이돌인데??.... 나도 가요 듣는다…. 여하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나의 메탈 사운드 민감성에 저 두 곡이 포문을 연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하여가의 도입부는 약간 LA 메탈스러운 기타 리프이고 곡 자체에 미국 스래쉬 메탈 전설 중 하나인 Testament의 ‘First Strike Still Deadly’라는 곡의 표절 시비가 있었다. 그리고 ‘열 맞춰’는 미국 뉴메탈-랩메탈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Rage Against The Machine의 ‘Killing in the Name’을 표절했다는 의심을 받았었다. 오.. 그러나 난 이 기회를 통해서 한국 가요가 얼마나 표절로 점철된 시장이었는지를 단죄하고 비판하려는 게 아니다. 90년대까지의 한국 대중문화계는 분야를 막론하고 일본, 미국 거 갖다가 베끼고 양념 조금 쳐서 시장에 내놓는 게 유일한 살길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리티를 추구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시장이 크는 속도를 Artistry가 따라잡을 수는 없는 법. 애미애비도 없는 고아가 뭐라도 만들어보겠다고 한다면 뭐 어쩌겠는가… 옆 동네 잘 사는 형들 보고 배우는 수밖에... 게다가 누구껄 베꼈다고 해서 지금처럼 인터넷도 없었던 시절이라 걸리기도 쉽지 않았다.
뉴메탈의 시대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흘러 내가 본격적으로 ‘헤비메탈’ 장르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된 밴드가 바로 KoRn이다. 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새로운 사운드의 메탈 장르를 청취자들과 평론가들은 소위 ‘Nu-metal’(뉴메탈)로 정의했었다. 위에 언급한 서태지도 기존 서태지와 아이들 해체 후 2000년 뉴메탈 밴드로 본격 컴백했을 때 KoRn도 그에게 있어서 ‘One of the forefathers’였다. 물론 KoRn이 처음 등장한 94년도엔 뉴메탈이라는 용어는 없었다. 언제나 장르는 선구자들의 활동 후 명명되는 법. 여하튼 내가 KoRn의 노래를 처음 듣게 된 계기는 그 당시 유행했던 ‘소리바다’라는 P2P 프로그램에서 우연히 곡을 다운로드하게 됐고 그게 KoRn 정규 1집 1번 트랙인 전설의 ‘Blind’였다. 당시 그 묵직하면서도 다크하고 헤비 한 기타 톤에 이유를 모르고 매료되었다. 여기서 ‘이유를 모르고’라는 대목이 중요하다. 쉽게 말해.. 메탈 헤드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DNA가 정해준 축복이자 저주이고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 멋대로 DNA라는 단어를 언급했지만 이것 말고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후천적 학습이나 노력에 의해서 좋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시피 하다고 봐도 좋다 -. 이 Blind라는 곡을 통해 나는 KoRn과 헤비 계열 음악에 본격 입문하게 된다. 바꿔 말하면 내가 메탈 계열 음악에 처음 입문한 것은 메탈 역사의 시간적 순서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한창 사춘기에 접어드는 시기인 90년대 극 후반 록/메탈 신에서 당시에 가장 유행했던 장르부터 였다는 것이 된다. 그것이 소위 말하는 ‘뉴메탈’이고 KoRn은 이 장르를 규정하는 선구자들 중 하나이다. 보통 KoRn 하면 가장 처음 3개 앨범을 최고로 치고 대표적인 곡들이라면 ‘Blind’, ‘A.D.I.D.A.S’, ‘Freak on a Leash’ 같은 곡들을 꼽는다. 하지만 여기엔 이들의 2002년의 다섯 번째 앨범의 첫 번째 싱글인 ‘Here to Stay’를 넣었다. KoRn의 음악적 전성기가 이미 지난 때 나온 앨범이고 역사적 평가도 그리 크게 받지는 못하지만 준수한 반응을 얻었었고 무엇보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프로그레시브 한 사운드적 시도가 엿보여서 이들의 음악적인 원숙함을 보여주는 곡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 락계는 여러 스타일과 장르의 혼합, 교잡의 물결속에 있었다. 더 이상 한 가지 장르에서 나올 사운드는 더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다른 장르/스타일들의 혼합이 새로운 재미를 만드는 긍정적인 과정이었을 수도 있었을거다 – Linkin Park의 데뷔 앨범 타이틀이 ‘Hybrid Theory’ 인 것은 과연 우연인가? -. 뉴메탈 씬도 당연히 이 변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세력 중 하나였다. 그 중에 단연 돋보이는 활약을 한 팀 중 하나가 국내에서도 이름 정도는 들어본 사람이 꽤 되는 Limp Bizkit이다. 랩과 메탈, 힙합과 락, 턴테이블 DJ의 밴드 참여는 모두 이들 이전에 이미 있던 것들이었다. Faith no More, Rage Against The Machine, Red Hot Chili Peppers 같은 밴드들에서 랩이나 힙합의 접목 시도는 들어볼 수 있었고, Mushroomhead 같은 밴드가 이들 이전에 더 먼저 샘플러를 밴드 멤버로 기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Limp Bizkit의 성공은 그들이 선구자들보다 더 잘 나갔다는 데에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들의 유니크한 스타일이 대중적 성공까지 거두었다는데에 있다. 위에 언급한 KoRn 과는 돈독한 친분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이들이 아직 로컬에서만 놀던 동네밴드였을 때, Limp Bizkit의 프론트맨인 프레드 더스트가 KoRn의 베이시스트에게 데모 테입을 들려줬고, 괜찮다고 생각한 KoRn이 이들을 오프닝 밴드로 기용하면서 본격적으로 전국적인 인지도를 쌓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하는 Limp Bizkit 음악의 특장점은 뉴스쿨 하드코어/펑크와 Pantera 같은 그루브 한 메탈의 영향에 적재적소에 아주 잘 들어가 있는 랩/힙합적 접근이다. Limp Bizkit의 가장 명반이라면 처음 세 앨범을 꼽는데, 1집으로 락계에 떠오르는 신성으로 얼굴도장을 찍었다면 2집으로 본격적인 대형 밴드로 진입하였고, 3집으로는 락/메탈을 뛰어넘어 대중적으로도 세계적인 거물급 밴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삽입한 링크는 2집 ‘Significant Other’의 첫 번째 싱글인 ‘Nookie’의 뮤직비디오다. 99년 발매한 앨범이지만 비디오는 전형적인 2000년대 초반 감성을 잘 보여줘서 그 시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움의 미소를 짓게 만든다.
이 시기에 뉴메탈로 메탈에 입문한 나는 당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CD Player를 조금 쓰다가 본격적으로 MP3 파일을 다운로드해서 음악을 듣고 다녔다. 국내외 대중음악 역사의 산업적 지각변동 한가운데 있었던 나도 음악을 훔치는 공범의 대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하지만 파일공유와 인터넷이라는 도구는 밴드 음악에 대한 접근성, 정보 습득 차원에서 그 강력함과 편리함은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당시, 오히려 마이너 한 밴드들은 자신들의 음악이 세계로 퍼지는 데에 MP3 공유의 덕을 보는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경우도 있었다–개인적으로 ‘표현양식의 근본적 혁명’ 과 ‘산업형태의 변경’ 이라는 큰 차이점이 있긴해도, 이 당시의 파일공유의 등장은 현대미술계에서 ‘마르셀 뒤샹’의 출현에 해당하는 음악계 지각변동을 일으켰다고 본다-. 이 시기에 나는 친구로부터 ‘Slipknot’이라는 뉴메탈 밴드가 있다는 말을 듣고 P2P 프로그램을 뒤져 이들의 곡을 몇 개 다운받았다.
Slipknot(슬립낫)
미국 아이오와주 출신 9인조 뉴메탈 밴드인 Slipknot(슬립낫)은 등장부터 일단 전원이 각자 특유의 가면을 쓰고 정비공 작업복을 맞춰 입고 나왔다는 데에서 흥미를 유발했다. 물론, 이 방면에서 슬립낫이 최초라고 하긴 무리가 있다. 비슷하게 70년대 하드락 밴드 KISS의 페이스 페인팅이 있었고, 더 올라가면 Alice Cooper도 있다. 하지만 ‘가면’을 전면에 내세워 메인스트림 락 씬에 등장한 이들 중에 슬립낫만큼의 파급력이 있던 밴드는 아직까지도 없다–가면이 이들의 최초 시도도 사실은 아니다...위에 언급했던 Mushroomhead가 사실 이들보다도 먼저 가면을 쓰고 나왔지만 유명세는 후발주자인 슬립낫이 가져갔고.. 심지어 많은 이들은 가면이 슬립낫이 최초인 줄 아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렇게 Mushroomhead는 비운의 밴드가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오로지 비주얼로만 먹고사는 밴드였다면 2024년 현재까지 장수하는 거물 중견 밴드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난 슬립낫의 음악적 효용(?)은 2집 앨범까지라고 보는데.. 지금 들으면 가사나 사운드, 비주얼 컨셉.. 모든 것이 중, 고등학생 정도에 어필할 만큼 유치하다고 느껴지지만 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당시의 사운드적 완성도는 가면만큼이나 센세이션했었다. 시대의 변종적 흐름에 맞추기라도 하듯 드럼, 베이스, 기타 둘, 보컬 기본 바탕에 턴테이블 디제이와 샘플러가 각각 따로 있고 심지어 퍼커셔니스트 두명 까지 더 기용한면이 돗보인다- 사실, 샘플러와 퍼커션 두명의 라이브 에서의 비중은 적다 못해 암담하다. 그래서 퍼커셔니스트 두명은 주로 무대매너나 분위기 띄우는 방식의 퍼포먼스를 주로 보여준다-. 이들의 1, 2집은 전곡을 다 추천하는데 첨부한 링크는 2집 첫번째 싱글인 ‘Left Behind’의 뮤직비디오다. 중,고교생 시절 한참 듣던 밴드이고 딱 그 나이 그 감성에 어필하는 뮤직비디오의 멋있음(?)이 인상적.
슬립낫에서 샘플러와 퍼커셔니스트 두 명이 라이브 공연 시 비중이 암담하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그건 라이브에 한해서이고 퍼커션 둘 중 한 명인 통칭 ‘Clown(광대)’ 라는 닉네임의 ‘Shawn Crahan’은 밴드의 스튜디오 프로듀서를 겸하고 있다. 따라서 스튜디오에서의 그의 영향은 공연장과 정반대이다. 그가 프로듀싱 한 또 다른 뉴메탈 밴드 ‘Mudvayne(머드베인)’ 또한 나에게 있어 뉴메탈 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밴드이다. 슬립낫의 영향인지 혹은 시대의 영향인지 머드베인 또한 실제 얼굴이 아닌 짙은 페이스 페인팅이 외적 특징이다. 하지만 이들은 슬립낫처럼 상당 기간 무대 밖에서도 익명성을 유지하진 않았다. 머드베인은 여느 뉴메탈 밴드들과 비교해도 독창적인 사운드와 프로그레시브적인 스타일을 보여준 독보성이 있는 팀이다.
쵸퍼 베이스 주법의 오프닝이 인상 깊은 이들의 첫 번째 앨범 ‘L.D.50’의 첫 번째 싱글 ‘Dig’의 2000년 호주 Big Day Out 페스티벌 라이브는 아직도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모습만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무대매너를 보면 그냥 악다구니 쓰며 막 나가는 애들같이 보일 수 있지만, 머드베인은 쟁쟁한 연주 실력자들이 모인 밴드이다. 특히 베이시스트가 유명-뉴메탈은 대중적이지만 음악적 난이도는 그리 높지 않은 장르라고들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장르에서 잘 나갔던 밴드들에는 상당한 실력자들이 꽤 많은 장르 이기도 하다.
뉴밀레니엄 시대에 접어들고 한국과 일본에서 공동으로 월드컵도 개최한 시대 즈음, 나에게 있어 뉴메탈의 시대는 고교에 진학함, 그리고 메탈이라는 세계에서 다른 사운드를 찾아보고픈 욕망과 함께 서서히 저물고 있었다. 해외에서는 2003년 이 뉴메탈이라는 장르는 정점을 찍고 그 이후엔 완만히 하락세를 걸었다는 이야기가 많다. 뭐 꼭 틀린 얘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역사적 사실은 많은 뉴메탈 밴드들이 2000년대 중후반, 우리나라로 치면 이명박 정권 정도까지는 왕성하게 앨범을 발매하고 명맥을 꽤 이어나갔다는 것이다. 이 팀들을 다 소개하는건 지면이 다 할애해도 모자라기 때문에 뉴메탈 시대는 나에게 의미가 꽤 있었던 두 팀만 더 소개하고 넘어갈까한다.
Disturbed(디스터브드)는 미국 시카고 출신의 4인조 뉴메탈 밴드이고 2000년 ‘The Sickness’ 앨범으로 메이져 데뷔한 팀이다. 데뷔 앨범 이라곤 믿기지 않는 개성과 완성도를 보여주는 것이 압권. 여타 뉴메탈 밴드들과 비교해서 사운드적인 독창성은 머드베인과 초창기 디스터브드 그리고 뒤이어 소개할 System Of A Down(시스템 오브 어 다운, SOAD)이 갠적으로 뛰어나다고 본다. 디스터브드 초기작들은 이 밴드가 슬립낫처럼 샘플러나 디제이가 멤버에 없음에도 상당히 전자적이고 또한 인더스트리얼적인 사운드를 들려주기도 하는데, 프로덕션과 엔지니어링의 산물 일 수도 있지만 보컬인 David Draiman의 독특한 개성과 기타 사운드가 색깔을 더했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후의 디스터브드는 전통적인 메탈사운드가 더 강화된 면을 보여준다. 대중적으로도 상당히 성공한 디스터브드는 현재는 락이나 메탈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인지도가 상당히 있고 이 계열 밴드들 중에서는 상당히 대중 메탈 밴드 로서의 입지가 있다. 첨부한 링크는 데뷔앨범의 첫번째 싱글 ‘Stupify’. 뮤직비디오도 상당히 멋있다.
아르메니아계 미국인 4인조로 구성된 시스템 오브 어 다운은 감히 말하건대 독창성에서만큼은 뉴메탈 뿐만이 아니라 어떤 뮤지션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고 단언하는 바이다. 그리고 그런 개성과 음악적 완성도가 이들을 명실공히 2000년대 최고의 락밴드 중 하나로 만들었다. 특정한 문화권의 전통음악 사운드를 현대 대중음악과 접목하는 시도는 동서고금 있어왔지만 대중적인 성공을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전통음악은 보존적 가치가 있지만 사실 현대의 대다수의 대중들 입맛을 만족시키긴 힘들다. 하지만 그것을 해낸 것이 SOAD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멤버들 대부분 매우 어릴 때 미국으로 이민 왔거나 아예 미국에서 태어난 사실상 인종만 중동계이지 완전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음악에서 들리는 중동 사운드는 그냥 어렴풋이 사람들이 중동 음악이라고 믿고 있는 전형적인 그것이라고 볼 수 있다-진짜 중동 전통음악이 뭔지 모르지만...사람들이 다 아는 그 띵디리 띵가딩가~ 하는 사운드 인 것을 보면-. 하지만 진짜 SOAD의 강점은 그 전통 사운드를 얼마나 잘 버무려 냈느냐가 결코 아니다. 이들 음악의 뿌리가 현대 하드락/헤비메탈이든 중동이든 혹은 둘 다이든 그 모든 것을 범벅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장르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 진정한 의의다. 2000년대 중반 하드 락계는 SOAD가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대상 동일시기이기도 했고 어느 정도 비슷한 점이 있지만 SOAD를 단지 ‘뉴메탈’ 로만 정의하는 것은 맞지 않다. 이들은 장르 자체가 ‘System Of A Down’이다. 하지만 독창성에 기대를 받으면 더 이상 새로울 것이 없을 때 빠르게 외면당할 수 있다. 그것을 의식한 것인지 아닌지 이들은 해체하진 않았지만 20년 가까이 새 앨범을 내지 않고 기나긴 휴지기도 가졌다. 링크는 후반기, 중동 사운드가 더 강화된 앨범들 수록곡이다. 하지만 이들의 가장 큰 센세이션은 처음 두 앨범에서 보였다.
익스트림 메탈 입문
뉴메탈에 한참 빠져있던 중학생 시절, 당시 많이 쓰이던 ‘소리바다’라는 P2P 프로그램에서 정말 아주 우연히 다른 MP3 파일들에 낑겨서 정체불명의 노래 한 곡이 끼어들어왔다. 밴드의 이름은 ‘Cannibal Corpse’(식인종 시체).. 곡 제목은 ‘A Skull Full of Maggots’(구더기로 가득 찬 해골).. 제목만큼이나 충격적이었던 초강력 사운드는 하필이면 이 계열에서 제왕적 위치에 있는 밴드의 전설적 라이브 버전이었다. 그런데 이 곡을 듣자마자 내 몸의 반응은 해골에 담긴 구더기만큼이나 경이적이었던 것이다. 위에서 나는 ‘메탈인은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고 언급했었다. 내가 메탈인으로 태어났음을 이 곡을 듣고 나서 알아차린 것이다. 처음 듣는 순간 ‘바로 이것이 내가 찾았던 것이다’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 노래에서 나오는 온갖 사운드들은 일반적으로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란 인간이 좋아할 만한 것들은 아니다. 인간의 성대에서 나오는 것 같지 않은 파워 그라울링, 망치에 모터를 단것 같은 블라스트 비트 드럼, 적들을 찢어 발기는 듯한 머신 건 기타 리프, 그리고 기타 솔로 속도로 갈기는 문어발식 베이스.. 그런데 이런 것들이 그냥 이유 없이 좋았다. 그렇게 나의 초강력 메탈 탐구의 시대가 열렸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운 헤비메탈의 서브 장르 중 독보적으로 고립되어 있으면서 강력한 마이너 신을 유지하고 있는 분야가 ‘익스트림 메탈’이라고 불리는 하위 장르다. 극단적인 헤비메탈이라고 해도 의미가 그리 틀리지 않는데, 사운드의 극단성이든 가사나 배경이 되는 사상적인 면에서 극단적이든 그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 이 장르다. 익스트림 메탈은 크게 네 개의 세부 장르로 나뉘는데, 데스메탈, 블랙메탈, 고딕 메탈, 둠 메탈이 그것이다. 사실 말이 하위 장르이지 이 각각의 장르들은 각자의 독자적인 역사와 공고한 발전의 과정을 가지기 때문에 비슷하면서 많이 다르고 또한 어느 한 장르만 가지고 이야기를 해도 지면 할애가 되지 않는다.
주로 죽음, 폭력, 전쟁 등을 가사의 테마로 삼는 데스메탈은 스래시 메탈의 공격성과 스피드가 극단적으로 발전된 장르라고들 한다. 이 가운데서도 강력함과 스피드가 더욱 강력하게 폭발한 하위 장르를 ‘Brutal death metal’이라고 한다-아이고 그놈의 하위 장르 참 많네... 망할 덕후들..- 이 부루탈 데스메탈의 선구자들 중 하나이자, 데스 메탈계의 메탈리카에 해당하는 스타인 ‘카니발 콥스’는 나에게 인생 데스메탈 밴드 중 하나이다. 아니, 오히려 나에게 데스메탈 입문을 하게 해준 게이트웨이의 의미가 더 크다고도 할 수 있다. 밴드 사진 옆에 나란히 놓은 두 번째 정규앨범 ‘Butchered at Birth’의 커버 아트가 보여주듯 태생적으로 학부모 단체.. 아니 대부분의 인간들과 상성이 좋지 못한 장르가 바로 데스메탈이다. 오직, 나 같은 선택 받은 인간들만이.. 즐길 수 있다.. 그러니까 이런 사운드가 왜 좋게 느껴지냐고 한다면.. 바로 그 점이 나에게도 미스터리인 것이다..
데스메탈이 흑기사라면 ‘블랙메탈’은 흑마법사에 해당한다. 지금이야 블랙메탈도 세부 장르가 무수히 많아 주제나 테마가 매우 다양하지만, 블랙메탈의 초창기 가사와 사상적 배경은 악마주의나 사탄교, 지옥과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초기 블랙메탈에 한정해서 ‘사타닉메탈’ 이라고도 한다. 그 뒤 많은 테마적인 세부화를 거치며 이제는 블랙메탈이라도 북유럽 민간 신화나 주술, 샤머니즘 전통에 기반한 세부 장르같은 것들은 사타니즘과는 관련이 전혀 없는 것들도 많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초창기 블랙메탈은 ‘Raw black metal’ 스타일의 Mayhem(메이헴), Dark Throne(다크 쓰론), Burzum(버줌), Immortal(이모탈) 같은 밴드들의 위시한 노르웨이 음악이다. 하지만 이 장르의 발상이 되는 초초창기 당시로 올라가면 블랙메탈의 부모들은 Venom(베놈)이나 Bathory(바쏘리)같은 80년대 초반 밴드들이다. 그리고 이 Black Metal이라는 장르 명칭도 베놈의 1982년 앨범 ‘Black Metal’에서 온 것이다.
노르웨이 출신 블랙메탈 밴드 하면 Dimmu Borgir(딤무 보르기어)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다크 쓰론, 버줌과 같은 태초의 로우블랙메탈 선구자들보다는 좀 더 멜로딕 하면서 심포닉 한 사운드가 특징이었던 딤무 보르기어는 그들보다는 후발주자로 생각되지만 이후의 이 씬에서의 위상이나 대중적 인지도는 그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커졌다. 4번째 앨범부터는 기존의 Raw(로우) 한 스타일을 죽이고 좀 더 대중적인 그루브 메탈과 심포닉 사운드가 강화된 스타일로 변모해 기존 골수 블랙메탈 팬들 에게는 외면당했지만 그 몇십 배 되는 새로운 팬층을 얻으며 명실공히 북유럽을 대표하는 메탈 밴드가 되었다. 처음 딤무 보르기어를 들었을 때 느껴졌던 묘한 포근함과 동양, 북미 혹은 서유럽과도 전혀 다른 얼어붙는 감성에 매료되었었다. 여담이지만 이런 북유럽 블랙메탈 밴드들 때문에 어린 시절 막연히 스칸디나비아 쪽으로 배낭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했고 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으며 이후 이 장르에만 온 정신을 쏟을 때에는 바이킹이 되고 싶다는 미친 생각도 해봤더랬다. 그때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니.. 어릴 땐 다들 이상한 생각을 하곤 한다고 스스로 용서해 본다.
잉글랜드 출신의 Cradle of Filth(크레이들 오브 필스 = 시체의 요람)는 벰파이어, 마녀, 섹스, 미녀 살해, 새도마조히즘에 반쯤 미친 그야말로 지옥에서 온 악마 같은 그룹이다. 특히 99년 발매한 EP인 ‘From the Cradle to Enslave’의 동명의 타이틀곡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는 표현의 수위는 프론트맨인 Dani Filth의 예술적 광기와 집착..그리고 저돌성을 여과 없이 보여주다 못해 99%의 인류에게 PTSD를 안겨줄 것이다– Uncensored 버전이 유투브에 어찌 된 일인지 안 짤리고 잘 올라가있다. 궁금하면 찾아보라 -. 사실, 크레이들 오브 필스를 딱 블랙메탈 하나라고 정의하기도 사실 이제는 어렵다. 물론 초기 앨범들에선 블랙메탈의 방법론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다른 로우한 블랙메탈 밴드들과는 차별적으로 테크니컬하면서 그루브 한 스래쉬메탈의 영향 또한 많이 담고 있었다. 심포닉 블랙메탈, 멜로딕 블랙메탈, 아니면 그냥 익스트림 메탈...이들의 음악을 정의하는 여러 용어들이 있지만 ‘독창성’ 이야말로 크레이들 오브 필스를 제대로 표현하는 단어다. 한창 감수성 예민하던 시기에 듣던 이들의 음악은 나에게는 흡사 사람 피로 쓰여진 낭만적인 동화와 같았다. 사실, 다니 필스가 추구하는 가치 중 하나가 그 나름대로의 ‘로맨티시즘’이다.
나의 익스트림 메탈 기행기에 있어서 아무래도 데스메탈과 블랙메탈이 지분의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이 스웨덴 출신의 Progressive Gothic Metal 밴드인 Opeth(오페스)는 메탈이나 그 세부 장르를 떠나 나의 전 음악청취 역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미쳤고 나의 개인작업에도 상당 부분 영향을 주는 밴드다. 밴드의 프론트맨이자 모든 곡의 작곡 작사를 하고 모든 보컬파트(그로울링, 클린 보컬)와 리드기타를 맡고 있는 불세출의 천재 Mikael Akerfeld(미카엘 오커펠트)는 분야는 다르지만 그 재능과 천재성에서 나를 좌절케 하면서도 동경하게 만드는 대상이었다. 고딕메탈이든 둠메탈이든 미드-슬로우 템포의 속도에 무겁고 슬픈 사운드를 공유하지만, 어떤 뮤지션이든 음악적으로 원숙미가 정점에 다다르면 어떤 식으로든 프로그레시브 쪽으로 가게 되어있다. 그건 청취자도 어느정도 마찬가지다. 중요한 것은 오페스는 시작부터 프로그레시브로 시작해서 프로그레시브의 심연으로 간다는 것이다.
스래쉬메탈과 더욱더 전통적인 메탈
앞서 설명해야 했지만, 뉴메탈 시대엔 내가 음악을 듣던 시기와 그 장르의 부흥기가 일치했지만, 이후의 개인적 탐구의 시간대에선 나의 메탈 여정은 연대순으로 볼 때 선형적이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헤비메탈이라는 음악이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탄생했고 이 장르의 발전이 나의 관심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메탈 역사의 어느 한 시점에 이 열차에 탑승한 나로선 이것을 더 알기 위해 과거로의 여행을 해야만 했다. 그렇다고 정말 메탈의 탄생이나 시조라고 할 만큼 멀리 간 것은 아니다. 난 대체로는 6,70년대 음악엔 큰 관심이 없다. 고등학교 1학년 때-잠시 메탈 기타리스트를 꿈꿨을 때- 동네 기타 샵에 딸려있는 기타 학원에 다닌 적이 있다. 그 기타 샵 점장형이 나와 친구들이 가게에 기웃거리고 음악에 대해 관심 있음을 알자 “요즘 친구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 위주로 듣고는 하는데 Deep Purple(딥 퍼플)같은 전통적인 그룹부터 차근차근 들어봐야지”라고 의견을 제시해 준 일이 있었다. 쉽게 말해, 음악에 관심이 있고 제대로 알려면 역사 공부하듯이 음악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일을 복기해 보면 그 사람의 말이 틀렸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다. 누가 이 글을 읽을지.. 혹은 읽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메탈이든 다른 음악이든 본격적으로 알아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처럼 하라고 권하고 싶다. 무엇이 됐든 자기 귀에 꽂히는 것부터 시작하고 그걸 발판으로 가지를 치고 시간을 거슬러 오르든 같이 타고 가든 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8,90년대 전통 메탈과 스래쉬메탈의 탐구는 어찌 보면 나도 알지 못했던 연대기의 뿌리를 찾는 여정이었다.
미국 남부 출신 카우보이 4인조로 구성된 Pantera(판테라)는 세상을 향한 겁 없음, 약간의 백인 우월주의, 내일이 없을 것 같은 음주습관 등으로 똘똘 뭉친 뼛속까지 미국 남부 사나이들의 밴드이다. 이 말만 들으면 그냥 미국 시골 출신 꼴통-사실 아주 조금 그렇기도-들 인것만 같지만, 이들의 미국 메탈에 대한 자부심과 진지함은 그들이 뿜어대는 테스토스테론 농도만큼이나 진하다. 보통 스래쉬메탈 빅4 라고하면 Metallica, Megadeth, Slayer, Anthrax(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앤스랙스)를 꼽고 6라고 하면 여기에 Testament, Exodus(테스타먼트, 엑소더스)까지도 꼽는다. 판테라가 소위 말하는 빅 머시기에 들어가지 않는 이유는 이들이 본격적으로 메인스트림에서 스타가 된 시점이 1990년으로 시점상 좀 늦기 때문이다. 물론 판테라도 80년대 초반부터 앨범을 내고 활동을 했지만 1990년 ‘Cowboys from Hell’ 앨범부터 획기적인 장르 변화가 성공의 시발점이 됐다. 특히, 이들의 라이브에서의 폭발적인 연주력과 퍼포먼스는 압도적임을 넘어서 메탈의 원초성과 카리스마는 대상을 압도할 때 빛이 난다는 격언-내가 만든 격언이다-을 체감케한다. 무엇보다 판테라는 나에게 ‘사나이’ ‘마초’란 이런 것이다를 깨닫게 해주었고 나도 저런 멋진(?) 사나이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다.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출신의 5인조 Lamb Of God(램 오브 갓). 1999년에 정규 1집을 냈으니-이 때는 ‘Burn the Priest’라는 이름으로- 시기상 전통 메탈은 아니고 오히려 뉴메탈이 한창 유행할 때 등장했고 어째서인지 이후에 언급할 메탈코어 밴드로도 간혹 묶이는 밴드인데, 둘 다 아니고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미국 스래쉬메탈 밴드이다. 단지 등장 시기만 1999년일 뿐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음악을 ‘Pure American Metal’이라 정의하고 있다. 뭐 사실 이것보다 더 이들의 음악을 잘 설명하는 단어는 사실 없다. 휘몰아치는 스피드와 그루브, 칼 같은 드럼과 엄청난 속도지만 매우 정교하게 때리는 망치 같은 기타..뭐 이들의 음악을 묘사하는 표현은 많다. 하지만 갠적으로 램 오브 갓 이야말로 바로 위의 판테라의 계보를 잇는 적자라고 평하는 바이다. 라이브에서 보여주는 경이로운 연주력은 덤.
스래쉬메탈의 전통을 이야기하면서 이제야 제대로 전통 그 자체라고 할만한 밴드를 언급할 차례다. 80년대 초반 북미나 유럽 등지에서 마치 인위적으로 공격성과 속도만 급속 배양 시킨 것만 같은 과격한 메탈들이 시도되고 있었다. 위에서 다뤘던 데스메탈은 바로 이 당시의 스래쉬메탈을 기반으로 탄생/발전한 음악이고 80년대 초 일부 과격한 스래쉬메탈은-국내에선 이런 스타일을 ‘쌍팔스래쉬’ 라고들 하는데 어원은 모르겠다- 데스메탈이 없던 시대의 데스메탈이었으며 동시대의 가장 부루탈한 음악이었다. 지금 들으면 이 시기의 곡들은 그냥 앞으로 직진밖에 할 줄 모르는 단순무식한 구성에 연신 속도와 파워로 갈아대는 단순무식의 극치를 보여줘서 다소 촌스러운 감이 있지만 시대를 거듭하면서 이런 밴드들의 음악도 성숙해갔다. 독일의 대표 쌍팔스래쉬 Kreator(크리에이터)는 현재까지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명실상부 메탈계의 갓 파더 중 하나이며 대다수의 노쇠한 밴드들이 더 이상 할 게 없고 그저 자가복제만을 반복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라면 크리에이터는 아직까지는 앨범을 낼 때마다 그 성숙미의 끝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치기 어린 시기에.. 파괴, 폭력, 극단적 공격성 등등에 한껏 매료되어 있을 때 크리에이터는 나에게 바이블이었다.
대 메탈코어의 시대
이제 다시 시계를 바로 맞춰서 현재의 트렌드로 돌아오면 지금은 ‘메탈코어’의 시대이다. 메탈코어라는 것은 90년대 중후반 언더에서 실력을 연마하고 훈련에 매진하고 있던 신진세력들이 2000년대 초반 무렵부터 혜성처럼 등장해 헤비메탈 씬의 가장 대중적이고 메인스트림한 트렌드로 왕좌에 앉게 되었다. 메탈 + 코어처럼 보이는 장르의 명칭으로 보이듯 이 전 시대 메탈의 헤비니스를 약간 덜어내고 좀 더 쉽고 대중적인 그루브와 멜로디에 간간이 나오는 클린 보컬의 조합이 장르적 특징이었기에 전통적인 메탈을 선호하는 집단이나 데스메탈 같은 초강력 한 장르의 리스너들은 이건 ‘정체성을 잃은 메탈’ 아니냐는 멸칭도 사용할 정도로 신-구세대를 명확하게 가르는 기준점도 이 장르는 제시하고 있다.
이 장르도 이제 등장한지 20년가량 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스타일적인 많은 변화가 있었다. Djent(젠트) 스타일을 접목시킨 이들도 있었고 비트다운 사운드가 돋보이는 시도도 있는가 하면 테크니컬하고 프로그레시브적인 시도도 있었고 하드코어 펑크와의 이종교배의 시도도 성공적이다. 이런 변이들은 오히려 전통적인 메탈보다 더 과격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일련의 스타일의 변이나 타장르와 접목이 있을 뿐, 헤비메탈의 역사에서 아직 메탈코어 이후의 메인스트림에서의 신 장르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이후에 또 어떤 것이 있을지.. 혹은 있을 것인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중요한 것은 아직도 못 들어본 메탈곡들이 부지기수이고 설령 만에 하나 이게 메탈의 종착역이라고 할지라도, 그리고 지금은 메탈이외의 음악도 많이 듣더라도 나는 메탈인으로 스스로를 소개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마치며
메탈에 대한 자유 형식의 음악 에세이를 부탁받았는데 분량 조절에 실패한 한 덕후의 만연체 밖에 안 된 것 같아 아쉽다. 하지만 더 아쉬운 것은 본문에 멜로딕 데스메탈이나 파워메탈 및 프로그레시브 메탈에 대해서 다루지 못한 것이다. 모두 나의 메탈 인생사에 중요한 것들이었고 이 글도 그런고로 나에게 개인적인 경험이나 기억을 떠오르게 한 그룹들 위주로 쓰인 것이라 ‘이 장르가 빠졌네’ 라거나 ‘이 장르에 이 밴드를 안 넣어??’라는 생각이 지금 막 들고 있다. 하지만 곧 40을 바라보는 나이의 한 인간이 살아오면서 이런 메탈을 들었노라 하는 정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글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몇 번 언급했지만 메탈 팬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배회하고 있거나 혹은 수태되고 있을지 모르는 메탈 형제자매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서근범 / 회화작가
고군분투중인 미술인입니다.
20년 이상 음악을 끊임없이 듣고 있습니다.
10대 때는 메탈 아니면 음악취급을 안 하다가..
10대 후반에 다른 장르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뒤,
이후엔 잡식성 음악청자의 삶을 사는 중 입니다.
그래도 나의 정체성은 'Metal he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