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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너는 말했지/ 서로가 다른 길을 걸어도 우리는 함께 간다고.”

정민재 · 2026. 1. 29.

얼마 전 라이너 노트 한 편을 썼다. 4인조 밴드 산보의 두 번째 앨범을 위한 해설지였다. 미리 받아본 앨범의 제목은 [아니카]. ‘이게 무슨 뜻이지?’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니 75cm 정도 자란다는 다년초 풀이 나왔는데 풀에 관한 앨범 같진 않았다. 스웨덴의 전설적인 골프 선수 아니카 소렌스탐이 있긴 한데, 그에 대한 앨범일 리는 없지 않겠나.

결국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야 했다. 워낙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쓰는 게 라이너 노트라지만, 제목부터 갈피가 잡히지 않아 아티스트와 통화하는 건 처음이었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산보의 멤버 윤아빈과 전화 연결이 되자마자 물었다. "저... 앨범 제목 ‘아니카’가 무슨 뜻이에요?" 그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혹시 [내 이름은 삐삐 롱스타킹] 보셨어요?" 아니카는 삐삐의 옆집에 살던 친구로, 자유분방한 삐삐를 만나며 틀에서 벗어나 성장해 가는 캐릭터였다. 그 말을 듣자 앨범의 실마리가 풀렸다.

산보는 친구들이 모여 만든 밴드다. 이들은 고등학교 때 처음으로 만나 대학교까지 함께 다니면서 밴드를 이뤘다. 올해 스물일곱이 된 멤버들은 친구에 대한 앨범을 만든 것이다. 갑자기 왜 친구 이야기를 하게 됐을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저희가 올해 스물일곱 살인데, 이 나이가 되니 예전처럼 친구들을 만나기가 어렵더라고요. 매일 보던 친구를 석 달에 한 번만 봐도 다행일 정도로요.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우리의 여러 일화를 앨범에 담았어요.”

스물일곱. 생각해 보면 정말 그런 나이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의 자리를 찾아 나서면서 삶의 영역과 경계가 바뀌고, 점점 세상으로 뿔뿔이 흩어지던 나이. 대학 시절만 해도 일주일에 두어 번씩 만나는 친구들이 있었다. 카페며 술집이며 쏘다니면서 시시콜콜 일상을 공유하곤 했다. 원래 고등학생 때 친구들이 평생 친구라며 바쁘게도 추억을 만들고 다녔다. 우리 우정은 영원할 거라면서.

우정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상황이 변한다. 서로 다른 분야의 일을 하며 다른 삶을 살다 보면 이전에 공유하던 모든 것이 줄어든다. 시간, 장소, 관심사, 이야기... 스물일곱이 된 산보의 윤아빈은 매일 보던 친구를 석 달에 한 번만 봐도 다행이라고 했다. 서른다섯이 된 나는 친구를 반년에 한 번만 봐도 다행이라고 여긴다. 더 나이가 들면 일 년에 한 번만 봐도 다행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양희은은 자신의 노래 ‘그리운 친구에게’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는 지금 어디에/ 무엇을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 그 얘기를 기억하는지.” 이 곡은 그가 마흔이 되던 해에 발표한 노래다. 불혹에 접어든 그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직이 읊조린다. “우리의 젊은 가슴 속에는 수많은 꿈이 있었지/ 그 꿈에 날개를 달아 한없이 날고 싶었지.”

그리운 친구들은 가슴 속에 있던 수많은 꿈에 날개를 달아 한없이 날고 있을까? 지금은 한창 날고 있어야 하는 나이인데. 나조차도 그러지 못하고 있으면서, 한 번씩 친구들이 떠오르면 잠시 애틋한 마음이 든다. 그런 마음이 잠시만 스치는 건, 오랫동안 추억에 잠길 여유가 없어서다. 친구들과 즐거웠던 시절이 그립지만, 이제는 돌아갈 수 없는 과거다. 나는 지금을 살아야 하고 꿈에 날개를 달아야 한다.

다시 양희은의 말을 빌린다. “너는 말했지/ 서로가 다른 길을 걸어도 우리는 함께 간다고.” 그리운 친구가 생각날 때면 이 노래를 듣는다. 우리는 다른 길을 걸어도 함께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지만, 어쩌면 영원히 멀어지지 않는 마음이 있는지도 모른다. 앞으로 그리운 친구가 점점 더 많아질 테다. 자연히 이 곡을 듣는 날도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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