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사랑은 우리를 갈라놓을 것이다
김서영 · 2023. 12. 31.

‘사랑은 우리를 갈라놓을 것이다(Love will tear us apart).’ 앞 글자를 따 LWTUA로 줄여 부를 정도로, 하나의 명제처럼 굳어진 조이 디비전의 이 곡은 가장 설득력 있는 음악적 선언 중 하나다. 여덟 번, 혹은 아홉 번의 스트러밍으로 쪼개진 인트로에서부터 당신은 차츰차츰 찢어진다. 곧 메인 리프가 이어진다. 이 과정에서도 당신은 찢어지지만, 그 파열은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일어난다. 찢긴 당신은 그 뒤에 함께 따라오는 환희를 느낀다. 언젠가 혹자는 사랑을 ‘가장 정교한 형태의 자기파괴'라고 불렀다. 이 유구한 마조히즘을, LWTUA는 표제와 형식 양자 모두를 통해 구현해내고 있는 것이다.
조이 디비전의 팬이라면 영화 <컨트롤(2007)>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컨트롤>은 밴드의 프론트맨 이안 커티스의 일대기를 담은 전기영화로, 조이 디비전의 사진작가로 직접 일했었던 안톤 코르빈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기도 하다.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이 영화가 감독의 또 다른 전기영화, 제임스 딘과 사진작가 데니스 스톡의 관계를 다룬 <라이프(2015)>보다 훨씬 더 ‘진실하다’고 느낀다. 한 편의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진실이나 사실 같은 단어를 거론하는 건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지만, 적어도 이 영화에 삽입된 조이 디비전의 음악은 부정하기 어려운 ‘실제’이기 때문이다. 개중에서도 나는 ‘사랑이 우리를 갈라놓을 것’이라는 선언을 가장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이안 커티스는 인생의 수많은 단면을 살아냈고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이 선언은 탄생했다. 나는 그 탄생에 관한 작은 단서를 얻고 싶었고, 그것이 비록 한 창작자의 억측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컨트롤>의 주인공은 이안이지만, 감독과 관객의 시선을 대변하는 주 관찰자는 ‘데비’, 이안의 아내 드보라 커티스다. 그의 회고록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영화이니만큼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근원적인 한계가 있다. 이안의 삶이라는 일종의 수수께끼를 부여받은 우리 관객은 다름 아닌 데비의 시선을 통해 그 문제를 풀어내야 하는데, 그는 관찰자이면서 동시에 주인공의 대립항, 즉 안타고니스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데비는—적어도 영화 내에서는—시종일관 침착한 태도를 견지하는 인물이다. 열여덟 살이라는 무척 어린 나이에 이안과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상적인 아내상, 가정에 충실한 아내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이안의 내연녀 ‘아닉’이 정신없는 클럽에서 (열광적으로 환호하지는 않더라도) 조용히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데비는 부부의 집이 위치한 메이클즈필드와 공연장들이 밀집해 있는 맨체스터의 간극이 주는 괴리감을 잘 견디지 못한다. 무질서하고 퇴폐적인 맨체스터, 답답할 만큼 정돈된 메이클즈필드가 <컨트롤>의 영화적 공간의 두 축을 형성하고 있다면 데비는 후자를, 이안은 전자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이안은 메이클즈필드를 끔찍하게 생각하지만, 데비에게는 그곳이 바로 자신의 삶의 터전이다. 데비는 “내가 데이비드 보위를 좋아하게 될지 몰랐어”라고 말하면서도, 오로지 내연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서만 남편 이안이 소장한 레코드들에 손을 댄다.
하지만 감독은 두 사람의 충돌을 결코 자극적으로 과장하거나 과하게 낭만화하지 않는다. <컨트롤>의 모든 장면들은 조심스럽고 신중하다. 영화를 보다 보면 언제나 일정 수준의 보폭을 확보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이러한 거리 감각은 우리가 불가피하게 안타고니스트 데비의 시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통제(control)를 잃고 무력하게 끝으로 치닫는, 애처로운 한 명의 인간을 대하는 감독의 태도이기도 하다. 롱샷이 즐겨 사용되고, 등장인물들은 자주 미장센의 중심에서 벗어나 구석에 위치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지만, 정작 그 내용은 잘 들리지 않는다. 서사는 종종 불친절하게 생략된다. 왜 아닉은 기차에서 내린 이안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던 것인지, 오프 사운드로 처리된 문이 닫히는 소리와 불현듯 터지는 나탈리의 울음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 직업 상담소의 코린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스크린에 주어진 정보만으로는 그 답을 얻을 도리가 없다. 이안은 말없이 그저 갇혀 있기만 한다. 전화 부스에, 창문에, 자동차에, 이 도시에, TV 속에, 나아가 이 영화 속에 그리고 우리의 시선 속에.
공란을 메우는 것은 조이 디비전의 음악이다. LWTUA가 등장하는 시퀀스는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도로변에 차들이 띄엄띄엄 주차된 메이클즈필드를 이안과 데비가 걷고 있다. 이안이 묻는다. “다른 남자들이랑 자고 싶어?” 뒤이어 그는 놀란 얼굴의 데비에게 “네가 그랬대도… 괜찮아.”라고 의미심장하게 말한다. (이때 카메라와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상당해, 그들의 표정을 자세히 지켜볼 수는 없다.) 데비가 “진심이야? 그런 말을 하는 건 날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려.”라고 반문하자, 이안은 간결하게 말한다.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아.” 대화는 여기서 멈춘다. 데비가 먼저 떠나 그를 앞질러 걷기 시작한다. 둘 사이의 틈은 점점 더 벌어져 간다. 그 다음 장면은 그들의 집 안을 비춘다. 이안은 재빠르게 협탁에 놓인 열쇠를 챙긴 후 집을 나가버린다. 현관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히고, 소파에 앉아 잠시 TV를 보는 듯했던 데비는 기다린 사람처럼 이안의 방으로 냅다 향한다. 그의 방이 데비의 손에 의해 어지럽혀진다. 데비는 계속해서 펼치고 닫는다. 이안의 사진이 실린 신문, 스크랩북, 그의 레코드들을. (아마 이 물건들은 다시는 원 상태로 되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 눈에 띄는 음반이 하나 있는데, 귀퉁이에 ‘아닉 오노레’라는 낯선 이름과 연락처가 하나 적혀 있어서다. 수지 앤 더 밴시스의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 <Join Hands>다. 여기서 합주 중인 이안의 모습이 교차편집돼 들어온다. ‘사랑, 사랑은 다시 우릴 갈라놓을 거야.’ ‘이안’의 입 모양과 LWTUA의 싱크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이안’의 움직임과 이안 커티스의 노래가 합일되는 순간이다. 노래가 먼저였고 장면이 그 뒤를 따라간 걸까, 아니면 그 반대였을까? 어쨌든 이제 LWTUA는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게 된다. 데비는 아닉이라는 사람에게 전화를 건다. 연결음이 멈추고, 밴드의 노래도 같이 잦아든다.
You've turned away on your side
당신은 반대쪽으로 등을 돌렸죠.
Is my timing that flawed?
나의 타이밍이 그렇게 문제였던가요?
Our respect runs so dry
서로를 향한 우리의 존중은 메말라 가지만,
Yet there's still this appeal
살아가면서 함께 간직했던 매력만큼은
That we've kept through our lives
여전히 남아있어요.
사랑의 끝을 먼저 고한 쪽도, 화면 밖으로 서둘러 떠나버린 쪽도 모두 이안이지만 가사의 ‘this appeal’은 아무리 생각해도 사랑의 동의어로 읽힌다. 그는 노래를 통해 자신의 안타고니스트이면서, 일생의 사랑이었던 데비에게 대항하기를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비단 LWTUA뿐만 아니라, ‘Disorder’나 ‘Atmosphere’ 등 <컨트롤>에 쓰인 조이 디비전의 다른 모든 곡들 역시 배열되는 방법은 조금 다를지언정 동일한 역할을 수행한다. 멜로디와 가사, 영화의 비주얼이 한데 복잡하고 끈끈하게 뒤섞이면서, 뮤지션의 음악은 영화적 장치를 넘어서 스스로 극화할 수 있는 동력을 얻는다.
조이 디비전의 두 창립 멤버, 피터 훅과 스티븐 모리스는 영화에 대해 전반적으로는 큰 호평을 내렸다. 그러나 모리스는 동시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 어떤 것도 정말 사실은 아니”라고.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에서 일정 수준의 사실 왜곡은 반드시 발생하기 마련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 모리스 본인이 뒤이어 인정하였듯, “진실은 너무나 지루하므로(The truth is too boring).” 훅에 따르면 드보라 또한 같은 이유에서 이 영화를 정말로 싫어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랬던 그녀도 세트장에 여러 차례 들르면서 종국에는 배우 샘 라일리를 이안으로 불렀다.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 전기영화의 미덕을 충실히 따르는 <컨트롤>은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음악을 호명한다. 곁에 불러 세워진 음악이 기껍게 설득한다. 자신은 믿어도 괜찮다고.
김서영 (SBS 라디오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