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음(악 권)태기에 머물러 있다.
정아무 · 2024. 3. 2.

음(악 권)태기에 머물러 있다. 대체로 무음의 생활을 한다. 통근 시간의 소음을 견디기 위해서나 작업의 집중도가 떨어질 때 lo-fi 로 구성된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아도 1시간을 채 넘기지 못하고 끈다. 배경음악처럼 일상생활 매순간 어디에나 깔려있는 음악에도 염증이 인다.
무작위 재생을 눌러놓고 다음, 다음, 다음. 한 곡이 끝날 정도의 시간이 다 되도록 아무것도 듣지 않은 상태로 넘길 때가 잦아진 어느 날, 오랫동안 유지하던 멜론 스트리밍을 중단하고 어플을 지웠다. 인공지능을 활용해 내 취향을 반영한 플레이리스트를 자동 생성하여 무한히 재생하는 기능을 가진 애플 뮤직으로 옮겨갔다가 다시 그만두고 유튜브 뮤직을 무료체험 중이지만 그마저도 3월 4일이 되면 체험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했다.
AI가 추천해준 리스트 덕에 처음 접하는 곡들이 많아지긴 했지만 비슷한 느낌의 곡들이 이어지는 동안 흘려보내거나 도입부에서부터 다음으로 넘기는 일이 잦았다. 한 곡에 몰두하여 끝까지 듣게 하거나 다음에 다시 들을 곡으로 고유 재생 목록에 추가하는 일은 그다지 일어나지 않았다. 무수한 콘텐츠에서 무엇 하나 집어들지 못하는 내가 마치 엄청난 종류의 과자가 있는 곳에 데려다 놓고 단 한 가지만 고르라는 말을 들은 어린이 같았다. 경험이 많지 않고 취향이 명확해지지 않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처럼, 내 취향이 깊지 않아 듣는 음악이 한정되고, 그래서 고작 천 곡 정도가 들어있는 플레이리스트를 반복하다 질려버린 걸까.
음악이 수학적으로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정확히는 수학적으로 무한히 가능한 조합이 있더라도 인간의 미적 기준에 부합하는 것은 그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가능한 조합은 비틀즈에서 모두 실현되었고 지금의 음악은 원형이 되는 몇 가지의 스토리와 플롯 안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변주에 불과하다는 골자의 이야기였다. 이 와중에도 새로운 음악은 계속 태어나고 있으니, 세상에 얼마나 많은 음악이 존재할까. 살아가는 동안에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수도, 내가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방대한 음악 안에서 고작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음악을 썩 좋아하지 않는 편인가. 좋아한다고 말할 정도는 못 되나. 좋아하는 곡을 이야기하라면 각양의 이유를 들어가며 리스트를 줄줄 읊을 수는 있다. 그러나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명확한 바운더리가 없으니 취향이 범람하고 디깅이 필수인 시대, 이 정도로는 어쩐지 음악에 관해서 좋아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진 못하겠다.
내 플레이스트는 우연히 듣고 마음에 들어서,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곡이라서, 내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에 나온 음악들을 다시 듣다가, 그 때 그 시기 내 마음을 흔드는 가사와 멜로디와 악기 소리에 취하거나, 어떤 곡이나 앨범에 꽂혀 통째로 담아 넣고 반복해 듣다 마음에 드는 몇 곡이 남아 만들어졌다. 장르에 일관이 없는 건 이 때문이다.
다만 하나의 흐름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다. 분류 없이 알게 된 순서대로 차곡차곡 쌓았더니 곡들마다 살아온 날들의 기억 한 자락씩을 가지게 되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거나, 어떤 말이거나, 문장이거나, 어떤 시절이고, 장소다. 유난히 강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음악은 재생되는 순간 내가 속한 장면을 전환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 음태기는 반복되는 리스트가 지겹다거나 들을 것이 지나치게 많은 탓에 과부하가 왔거나 한 건 아니겠다. 오히려 음악에 빠지는 것을 피하고 싶은 방어기제일지도.
마음의 현 상태와 결이 유사한 음악을 만나면 한동안 그 곡을 반복해서 듣는 나는 벌써 만 1년 째 이별중이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 이맘 때였지 그래 오늘 같은 바람 불었지. 그 겨울을 어떻게 잊나. 우리는 아마 영영 그렇게는 만나지 않을 거니까. 이유가 있겠지. 나의 잘못이 아니었단 걸 깨닫기까지 아주 많은 시간이 걸렸어, 내 마음 같은 가사를 입에 넣고 굴렸다. 이 곡들을 그도 듣고 내 마음의 처참함을 알아보기를, 그에게 한 자락이라도 전해지길 바라며 들었다. 부질없는 이 마음을 어떻게 그칠 수 있는지 모른 채로 지쳐버렸다. 말에 음의 높낮이가 붙고 악기들로 채워진 곡 하나에 다 이기 못한 슬픔이 생생해지곤 했다. 지긋지긋한데도 마침표를 찍지 못해 기진하다. 음악에 지친 게 아니라, 좀처럼 극복하지 못하는 실연에 진저리가 난 것이다.
좋은 이별을 한 적이 있다. ‘좋은’이라고 지칭해도 괜찮은지는 망설여지니 좋은 기억으로 남은 이별을 한 적 이 있다고 고쳐 쓴다. 벌써 15년이 지난 이야기인데도 종종 입에 올리는 이 이별에서 나쁜 것은 나였다. 너를 좋아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이별을 결심했다. 이별을 통보하고도 한동안 우리는 그 관계를 지속했다. 서로가 이별을 완전히 받아들일 때까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각자의 환경과 상황,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이 미지였으나 우리가 스스로에 대해 또 상대에 대해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터놓았다.
마지막 데이트를 하던 날 우리는 자주 울었다. 그 날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나도 그도 직감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끝까지 다정했다. 하필 그날, 어딜 가든 [대낮에 한 이별]이 흘러나왔다. 햇살이 좋았고, 마지막으로 포옹을 하고 웃으며 서로에게 인사했다. 그 날의 기억은 이제 희미해져 인상만 남아있지만 아직도 [대낮에 한 이별]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따뜻했던 이별이 떠오른다.
다시 이별이고 이번에는 나만 오래도 아픈 이별이다. 긴긴 이별의 계절 동안 내 마음 같아 자주 반복해 들었던 곡들은 먼 후일 언젠가 불현듯 마주할 때마다 이 시기를 떠올리게 할 것이다. 감정이나 계절이나 기억이 어떤 곡을 재생시키기도 할 것이고.
그렇다 하더라도 삶이 계속 되는 동안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계속 채워가기로 한다. 한 장르에 국한하거나 분위기나 특징으로 규정할 수 없을 이 플레이리스트는 나와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을 말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 사랑하는 음악들이 재생될 모든 공간에서 나와 사람들의 시간이 영원히 살아 있을 것만 같다.
정아무 / 호텔리어(일단은, 아직은)
소설가 지망생. 책 읽고, 글 씁니다.
순하고 털이 푹신한 고양이 미뇽과
10년 째. 최근 요기니가 되었습니다.
나다운 것들로 살아가는,
그것으로 족한 삶을 추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