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
유서희 · 2023. 9. 29.
생활기록부를 살피는 게 유행이라고 합니다. 학창 시절의 나 자신이 생소한 건 저뿐만이 아니겠죠. 초등학교 5학년의 저는 국방부 장관을 꿈꿨고, 고등학생 시절엔 정치인이 되고자 정치학과를 지망하던 야심가였는데, 지금은 신문을 읽으면서 정치면을 가장 빠르게 넘기는 ‘방송국 놈’이 되었습니다. 라디오를 각별히 아낀 것도, 음악 애호가도 아니던 제가 라디오PD로 밥벌이를 하고 있습니다.
음악이 한 사람의 인생을 뒤흔든 이야기들을 좋아합니다. 뮤브 뉴스레터를 받아보는 분이라면 자판기 버튼 누르듯 나오는 이야기 하나쯤 품고 계시겠죠. 저의 버튼은 라디오 일을 하게 된 여정인데요. 시작점은 구오빠, 테이입니다. 저는 지금도 teiwith로 시작하는 메일주소를 사용합니다. “teiwith의 tei가, 그 테이 맞아요?” 맞습니다. 학창 시절 동아리 면접부터 SBS 입사 면접까지 으레 받아온 익숙한 질문입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확실히는 모르겠습니다. 덕질을 열심히 하다 보니, 음악을 좋아하게 된 것에 가깝다고 느낍니다. 9살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약 10년 동안 사랑 참 지독했습니다. 전국의 지역축제, 대학축제를 따라다니고, 제주도에서 하는 콘서트에 가기 위해 가족여행을 계획하고, 테이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면서 뮤지컬을 좋아하게 됐습니다. 테이가 우승한 오페라 경연 프로그램의 결승전을 보러 서울로 향한 날도, 대전의 작은 라이브 클럽에서 핸섬피플 공연을 본 날도 생생합니다. 테이가 출연하는 라디오를 듣다 보니, 테이가 진행하는 라디오를 듣는 날도 왔고, 라디오를 즐겨 찾게 됐습니다.
동방신기, 빅뱅, 원더걸스, FT아일랜드, 소녀시대, 샤이니, 아이유, 투애니원, 엑소... 그 무수한 가능성을 두고 하필 테이를 덕질해서. 라디오를 만들고 있는 이유를 적으라면 이렇게 적어야 솔직한 답변일 것 같습니다. 라디오 일을 하면서 구오빠에게 감사한 순간이 자주 있습니다. 동시대에 활동한 가수들의 노래가 흐를 때, 게스트로 출연하는 뮤지컬 배우들과 그들이 부르는 넘버가 익숙할 때, 그의 싸이월드 BGM이었던 두 번째달의 ‘The Boy From Wonderland’가 효과음으로 깔리는 순간에 모두 구오빠가 있습니다.
“I don't know why/첫사랑은 영원토록/내 눈물로 새겨져/평생 지울 수가 없는 거니까”. 테이 1집 앨범에 수록된 ‘Why’라는 노래의 구절입니다. 노래방을 좋아하진 않지만, 저의 애창곡이기도 합니다. 몬스타엑스 ‘DRAMARAMA’의 “그게 되나 적당히 좋아하는게”에 비할 만한 가사 아닌가요? ‘DRAMARAMA’가 사랑을 주체할 수 없는 순간을 담았다면, ‘Why’는 그 순간을 넘겨 흘려보낸 애틋한 사랑 이야기겠죠. 테이의 옛날 노래들을 지금도 종종 찾아 듣습니다. 덕질에 대한 저의 감정은 이제 애틋함인 것 같습니다.
당신에게 각별한 노래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세상에 좋은 노래는 많고, 끊임없이 태어납니다. 그만큼 노래를 잘 아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노래가 오래 기억된다면, 특별하다면, 그 이유는 무한히 길어지는 노래 목록에서 하필 그 노래를 선택한 사람의 이야기에 있을 겁니다. 음악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뮤브가 음악과 더불어 이야기의 즐거움도 선물할 수 있길 바랍니다. 뮤브와 당신의 이야기를 응원합니다.
추신. 최근 결혼 소식부터 M사 아침 라디오 DJ 자리를 꿰차신 것까지 기쁜 소식이 많았습니다. 평생 지울 수 없는 애틋한 기억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한 라디오PD가 되어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테이 씨에게 가닿진 않더라도 감사한 마음을 담아 적어봅니다.
유서희 / SBS 라디오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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