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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이삿짐 정리가 나에게 미치는 영향

잼미킴 · 2024. 8. 6.



지루한 장마가 계속되는 여름. 끊임없이 돌아가는 제습기에는 물이 가득 차고 있다. 이사한 지 이제 한 달 되는 지금 아직도 정리 안된 짐들이 "내 자리 좀 찾아줘요"하며 여기저기 손 내밀고 있다. 2019년 결혼 후 3번째 이사 끝에 마련한 우리 집. 이제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못 박으며 살 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니더라.

뱃속에 둘째가 자라고 있어 태교에도 좋은 차분한 노동요를 들으면서 짐 정리하려 해 카페에서 일할 때 많이 듣던 ‘빌 에반스(Bill Evans)’의 노래를 틀어본다. ‘Someday My Prince Will Come’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고 그러다 문득 생각나는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과 만나던 홍대 앞 상수역 근처에 있던 브런치 카페 ‘에반스 빌’이 생각난다. 북유럽 가구가 놓여 있고 계단을 하나 내려가면 우리가 자주 앉던 약간 낡은 낮은 테이블과 포근한 소파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 나누고 뭔가는 작당하던 그때가 떠오른다. 이야기에 방해가 되지 않는 낮게 깔린 차분한 재즈가 나오고 따듯한 차와 커피를 마시면서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깔깔대던 그때를 생각하니 오래된 사람들이 문득 그리워진다.

그러다 다시 현실에 돌아와 짐 정리에 몰두하며 선반에 세워진 앨범들을 한번 만져본다. 나의 홍대 앞 시절을 함께한 다채로운 CD들을 보니 2009년 홍대 앞에서 일할 때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들르던 ‘미화당레코드’가 생각난다. 구로아트센터에서 열린 인디레이블 ‘루비살롱’에 소속된 밴드들이 공연하는 날. 그때 만난 국카스텐의 ‘거울’이라는 곡은 정말 엄청난 충격파를 안겨주며 나를 밴드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그 발걸음이 음반매장 ‘미화당’으로 이끌었고 거기에서 ‘구남과 여라이딩스텔라’, ‘로로스(Loro’s)’, ‘검정치마’, ‘못(Mot)’ 등등 다채로운 장르의 인디음악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게 되었다. 미화당에 수시로 가게 되면서 접한 구남과 여라이딩스텔라의 ‘감기 망상’, ‘건강하고 긴 삶’과 같은 곡은 정말 장르와 가사가 신박했고, ‘로로스’의 ‘너의 오른쪽 안구에서 난초 향이 나’라는 곡은 가사가 거의 없이 연주곡으로만 채워지는 것도 내 고정관념을 깨는 일이었다. 그렇게 나는 홍대 제2의 인디 전성기에 물들어 갔었다.

그렇게 물이 들어 가면서 부활한 ‘라이브 클럽 데이’에 빠져들고, 대표적인 라이브클럽 ‘클럽 쌤’의 마지막 공연을 보러 줄을 서서 티켓을 구매하며 라이브 클럽 투어에 내 젊은 청춘을 녹이기 시작했다. ‘클럽 FF’는 무대의 단이 낮았고 관객석이 바로 앞이라 공연하는 밴드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땀방울까지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땀 냄새와 알콜 냄새가 섞인 진한 라이브 클럽의 향기를 맡다 보니 어느덧 내가 매년 여름에 열리는 록 페스티벌에 비를 맞아가며 서 있고, 그다음엔 홍대 앞에 대한 글을 쓰며 인디씬에 있는 그들을 인터뷰하고 있고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게 되더라. 사람 참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첫째 아이가 듣는 동요 플레이리스트가 가득한 마지막에 구남과 여라이딩스텔라 최신앨범 ‘1969’를 추가해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뱃속에서 꼬물대는 둘째와 함께 말이다.

지난 5월 임신 5개월 차에 용기 내서 코로나 팬데믹 지나고 5년 만에 홍대 앞을 다녀왔다. 나의 청춘을 함께했던 내가 사랑하는 ‘낮달’에서 오래된 친구들과 함께 술잔 대신 밥 먹으며 홍대 앞 이야기를 나눴다. 터줏대감이 알려주는 홍대 앞은 이미 많이 바뀌어 있었다. 많은 라이브 클럽이 문을 닫고 밴드들이 연습하는 합주실도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그 사람들이 다 어디로 떠났을까? 옛날 홍대 앞 같지 않다는 이들의 말에 씁쓸했지만 아마 내가 청춘을 녹이던 2009년에서 2016년까지도 늘어나는 외부인과 관광객 때문에 ‘이제 홍대가 변했네’라며 똑같은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스피커에서 첫째의 플레이리스트 뽀로로 버전의 ‘문어의 꿈’이 나오는 순간 문득 ‘맹모삼천지교’가 떠올랐다. 묵은 먼지를 털어내는 음반들이 정착하는 보금자리가 여기가 마지막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다시 결심해 본다. 먼지가 또 쌓이기 전에 이사가 나에게 안겨준 내 청춘이 깃든 이 음반들을 다시 들어봐야겠다고 말이다.

잼미킴
홍대의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자, 홍대 앞 다양한 사람도 만나고
홍대 로컬문화에 관련된 글도 쓰고 재미난 콘텐츠도 기획했던 사람.
지금은 한 아이의 엄마이자 이제 10월이면 두 아이의 엄마가 됩니다.
언젠가 뜻이 있는 글을 닦고 기른 뒤, 인정 받고 베풀고자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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