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저는 케이팝을 못 듣겠어요
미묘 · 2025. 2. 7.

케이팝에 관해 글을 쓰고 이야기를 하는 삶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그중에 모양 빠지는 내용은 쏙 빼놓고 하나를 꺼내보자면, “저는 케이팝을 못 듣겠어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저마다 다르다. “요즘 너무 복잡해서”이기도, “편한 게 좋아져서”이기도 하다. 때로는 “얼굴 외우기 어려워서”나 “먹고 살기 바빠서”처럼, 케이팝이 즐길 대상보다는 교양 미션에 가깝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싶은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리고 물론, 케이팝 산업이 가진 착취적인 성격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라는 이야기를 해오는 분들도 있다. 연말연시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하자면 그분들의 고귀한 인품은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는데 그건 그들이, 그럼에도 케이팝에나 빠져 있는 미천한 나에게, 경멸이 아닌 존중의 시선을, 때로는 ‘이런 제 마음을 이해하시겠죠?’ 같은 눈빛을 보내 오고는 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하고 있다. 우리 중 많은 이가 그럴 것이다. 2017년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범죄가 폭로됐을 때 나는 어떤 영화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지금 저 영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으리라고 ‘안심’하기 어려웠으므로. 알려진 가해자가 관여한 영화들을 골라내는 방법도 있었을 것이다. 왜인지 자꾸 새로운 얼굴로 소비자를 만나는 남양유업 제품을 피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와인스타인 한 사람의 괴물이 문제의 원흉이 아님을 모르지 않았다. 그건, 이듬해 버닝썬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떤 케이팝도 이전처럼 듣지 못하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떤 아티스트, 어떤 기획사를 걸러내고 듣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여기서 망가진 건 믿음의 욕망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케이팝 스타들이 최소한의 선은 지키며 살아갈 것이라고, 그리고 그 선은 우리 사회의 최저선보다는 그래도 높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건 케이팝 산업이 상식적인 사람들로 이뤄져 있으며 최소한의 선은 지키며 굴러가고 있으리라 믿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2024년에도 비슷한 부도를 경험한 이는 많았을 것이다. 하나하나 열거하고 싶지는 않지만, 케이팝 산업에서 최대의 아웃풋을 내고, 가장 선진적인 시스템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진 회사들에서 새어나오는 이야기들이 트위터에서 접하는 ‘블랙기업 썰’을 능가하는 수준의 것들이었다. 이건 어떤 의미에서 아티스트의 웬만한 형사사건보다 치명적이었는데, 이 산업 전체가 완벽하게 비논리적이고 비윤리적인 자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고 여기서는 어떤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기 때문이었다. 이런 때에 “케이팝은 망해야만 한다”고 말하거나, 나 같은 이에게 “저는 케이팝을 못 듣겠어요”라고 말하며 환멸의 눈빛을 끝내 숨기지 못하는 이가 있다고 한들, 누가 그에게 지나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실 <케이팝 씬의 순간들>은 원래의 기획보다 출간일이 다소 늦어져서, 비상계엄으로 세상이 떠들썩한 12월 초에 세상에 나오게 됐다. 음악 책을 그런 시기에 내길 원하는 저자는…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편집자나 마케터는 아마 분명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손에 받아들었을 때 거리에서는 휘날리는 깃발 사이로 빛나는 응원봉들이 케이팝에 맞춰 흔들리고 있었고, 그것은 아주 어떤 기묘한 감정을 주었다. 매우 잘못돼 있지만 또한 아주 잘 들어맞는, 두 발이 천장에 붙어 있는데 아주 안정적으로 ‘서 있는’ 기분이 드는 듯한. 무엇 하나 원래 그러라고 있었던 게 없었지만, 덮어놓고 붙여보니 제격이었다. 한때는 정치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선택되었던 노래들과, ‘소비를 통한 나눔’ 같은 팬덤문화의 시그니처 같은 행동들마저. 이 반짝이는 부조리야말로 케이팝 그 자체였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케이팝을 듣고 앉아있는 것 같다. 케이팝 세계는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다. 말도 안 되는 나쁜 일들이 일어나기도 하는데 사실 그건 케이’팝’이라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대신 말도 안 되는 멋진 일들도 일어난다. 때로 그것은 ‘다시 만난 세계’의 벅찬 감동이기도 하고, 새벽 공기를 달구는 ‘Whiplash’의 열기이기도 하며, 어, 어, 하다 보니 2024년 가장 중요한 청춘 밴드가 되어 있는 데이식스이기도 하고, 연말 시상식에서 본때를 보여준 아일릿과 르세라핌이기도 하고, 갑자기 돌아온 베이비복스이기도 하며, 누구보다도 자기들끼리 즐거워 보이는 모습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는 이전에-뉴진스라-불렸고-앞으로도-그럴지도-모르는-아티스트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것들은 우리가 믿고 싶은 것들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인성이 훌륭한 줄 알았던 아티스트가 사실은 시궁창 같은 범죄자’라는 것보다는, ‘착취로 가득한 케이팝 산업에서 아티스트가 진정으로 빛나는 순간도 있다’거나, ‘경박하게만 느껴지던 케이팝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순간도 있다’는 편이 좀 더… 말이 안 되는 일들이다. 그리고 어리석은 우리들은 말이 안 되는 것들을 더 잘 믿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지 않고서야 애초에 케이팝 같은 것에 발을 들이지 않았겠지. 이왕 그렇다면 2025년의 케이팝은 더 황당무계하게 말도 안 되어주었으면 좋겠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파리 8대학에서 음악학을 공부했고 일렉트로닉 음악가로도 활동한 바 있다. 2012년 음악 웹진 『웨이브(weiv)』 필진으로 비평활동을 시작해, 2014년 케이팝 아이돌 음악비평 웹매거진 <아이돌로지>를 설립하고 초대 편집장을 지냈다. 케이팝을 중심으로 다수의 매체에 기고하며,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은근히 활동하고 있다. 『아이돌리즘: 케이팝은 유토피아를 꿈꾸는가』를 썼고, KLF의 『히트곡 제조법』을 번역했다. 최근에는 육아를 하며 아동 콘텐츠로도 관심사를 넓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