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환대할 준비 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슨 · 2024. 3. 30.

창으로 드는 햇살이 좋아서 데이브 브루벡 콰르텟 Dave Brubeck Quartet의 <Dave Digs Disney> 앨범을 틀어놓은 날이었다. “무슨서점에 가면 사장님이 기분 좋게 환대해 주신다고 그러더라고요.” 서점 단골인 친구에게 추천받고 들렀다는 손님이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졌다. ‘헉, 금방 내가 기분 좋게 환대했나?’ 천만다행히 손님은 환대받았다 여겼는지 내내 싱글벙글했다.(책도 많이 샀다) 반면 나는 손님이 떠날 때까지 부담스러운 마음을 안고 과도한 친절로 일관했다. 그런 속도 모르고 경쾌하게 흐르는 합주. 평소엔 어깨가 들썩이던 드럼 솔로가 귀에 거슬리기 시작할 즈음 손님이 떠났다. 문이 닫히는 걸 보자마자 온 몸에 힘이 빠졌다. 서점 벤치에 털썩 주저앉아 뻐근해진 목을 뒤로 젖히니 난방기 바람에 흔들거리는 벚꽃 오너먼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내 흐르는 명랑한 피아노 솔로. 환대란 대체 무엇일까.
서점을 하면서 생각지도 못했던 일에 난감함을 느끼곤 하는데, 그중 하나가 음악이다. 이 공간에 어떤 음악을 틀어 놓을지 정하는 일 말고, 하루 종일 홀로 음악을 들어야 하는 일이 퍽 난감했다. 나는 오랜 시간 무언가에 집중할 때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음악을 듣는 건 청소할 때나 외출할 때, 산책할 때, 드물지만 달릴 때다. 귀가하면 티비(그것도 음악 방송 채널)부터 튼다는 지인의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있나...’라고 생각하는 사람. 각종 소음 속에 노출돼 있다 돌아온 나만의 공간에서는 고요와 정적을 만끽해야 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사람이건 간에 서점 안에서는 음악을 틀어야만 한다. 적막한 서점에 손님과 단둘이 있는 건, 소개팅 상대와 첫인사 나누는 순간만큼이나 어색하므로. 열 평 정도의 작은 공간이라면 더더욱.
애석하게도 서점 지기는 서점에 오랜 시간 혼자 머문다. 2년 남짓한 시간 동안 서점에서 혼자 많은 음악을 들었다. 자연스레 규칙이 생겼다. 가사가(보컬이) 두드러지거나, 심하게 정적이거나 암울하거나 트렌디하거나 웅장한 음악은 피하기. 공간에 어울리지 않아서라기보단 이곳에 가장 오래 머무르는 ‘나와 맞지 않아서’다. 누군가 방문할 때마다 각각의 취향을 꿰뚫어 보고 점지하듯 음악을 틀 수는 없으니, 나에게라도 마침맞아야 한다. 그렇게 고르다 보니 계절이 오면 꼭 트는 음악도 생겼다. 그날의 날씨나 기분에 따라 불현듯 떠오르는 음악을 틀다가도 결국 다시 찾게 되는 음악들. 여름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루이즈 봉파, 존 피자렐리, 주앙 질베르토, 가을엔 펫 매스니, 구스타보 산타올라야, 겨울엔 듀크 조던, 강아솔, (눈 오는 날엔) 영화 러브레터 OST, 봄엔 데이브 브루벡, 이태훈, 마테오 스톤맨, 파스콸레 그라소…. 내가 고른 음악으로 나를 정확히 설명할 순 없겠지만 지금 내가 가진 정서만큼은 온전히 요약된다. 이 음악들로 채워진 서점은 서서히 내가 된다. 음악들이 대신 손님에게 전한다. ‘이게 나예요.’ 손님을 향한 은은한 강요 혹은 설득 어쩌면 나의 환대다.
“지금 나오는 거 <Last Train Home> 맞죠? 진짜 오랜만에 들어요. 와, 이걸 얼마 만에 다시 듣는 거야.” 서점에 펫 매스니 음반 여러 개를 종일 틀어놓던 날. 서점 곳곳을 누비며 책을 꼼꼼하게 들춰보던 손님이 탄성을 질렀다. 내가 좀 멀리서 왔다, 여기저기 미루고 이곳부터 들렀다, 나도 독서 모임 해본 적이 있다, 이 책은 나도 정말 좋아한다, 언제나 그랬듯 서먹하고도 친밀하게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는 흘러나오기 시작한 음악의 도입부, 기타 현이 울리는 소리를 듣자마자 감탄사처럼 제목을 읊었다. 나는 정작 놀라서 그 제목이 맞는지 확인하느라 허둥댔다. “세상에 여기서 이 음악을 다시 듣게 될 줄이야. 너무 좋네요!”
이 음악도 저 음악도 성에 안 차는 날, 같은 음악을 자꾸 들어 지겨운 날도 온다. 그러다 이따금 내가 튼 음악 제목을, 음악가를 알아채 주는 손님도 온다. 알아챈 것을 즐거워하며 나에게 말 걸어주는 이가 온다. 그를 맞닥뜨리는 순전한 기쁨이란! 남모를 나의 환대를 알아차리고 기꺼이 화답해 주는 그 아름다운 얼굴이란! 아마도 음악과 공간이 영 딴판이어서 냉담해진 얼굴도 있었겠지. ‘왜 이런 음악을?’하고 묻고 싶은 얼굴도 있었겠지.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 다른 취향을 감지하고 발견했다는 점에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새봄이 오기만을 기다린 목련 꽃망울처럼 부풀어 오른다. 환대는 혼자서 이뤄지지 않는다. 알아차리고 받아 줄 사람이 필요하다. 함께 해야 비로소 빛난다. 그런 거였다.
무슨 / 무슨서점 지기
혼자서 에세이 서점을 운영합니다.
다른 삶을 읽으며 더 더 선명해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