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 인터뷰
"적당한 음주는 음악에 도움이 됩니다"
윤석철 · 정민재 · 2023. 11. 23.
윤석철은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뮤지션이다. 지금도 매주 재즈 클럽의 잼 세션 무대에 오르는 그는 재즈 피아니스트로서 윤석철트리오를 이끈다. 동시에 자이언티, 샘김, 권진아 등의 음악에 재즈 터치를 불어넣었고, 프로듀서 ‘더 블랭크 샵’으로서 선우정아, 원필(DAY6), 안녕하신가영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재즈적인 가요를 만들기도 했다.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서 재즈 이야기를 할 때면 그의 이름이 빠지질 않는다.
올해는 옥상달빛 세진과 함께 앨범을 내 화제를 모았다. ‘조찬 클럽’이란 이름부터 눈에 띄는 이들은 두 사람이 사랑하는 술을 테마로 보사노바와 같은 라틴 음악 '칵테일 파라다이스'를 선보였다. 주로 작곡가, 연주자로서 역할을 수행했던 윤석철은 세진과 목소리를 맞춰 노래까지 부르며 새로운 매력을 드러냈다. 여느 때보다 신선한 모습으로 한 해를 보낸 윤석철과 만나 그의 음악 세계 전반에서부터 위스키와 요즘 재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얼마 전에 타이니 데스크 코리아에 윤석철트리오가 출연했죠. 어떠셨어요?
타이니 데스크는 음악 하는 사람이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상징성이 있잖아요. 그래서 제게도 굉장히 영광스러운 자리였어요. 긴장도 했고요. 딴 공연에서는 긴장을 안 하는데 뭔가 그날은 유독 긴장이 되더라고요.
20분 정도 구성이던데, 세트리스트는 어떻게 정하셨나요?
라이브를 비교적 안 한 곡을 위주로 골랐어요. 어떤 곡은 유튜브에 검색하면 라이브 영상이 너무 많아서 부담스러울 때가 있거든요.
올해는 윤석철트리오의 새로운 작품이 없었죠. 최근 인스타그램을 보면 합주 녹음도 하시는 것 같고 뭔가 작업 중이신 것 같던데... 새 앨범은 언제쯤 들어볼 수 있을까요?
글쎄요. 요즘 계속 곡 만들고 편곡하고 이런저런 실험도 해보고 있는 중이에요. 아직 언제 나온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라서 모르겠어요. 내년이나 내후년에 나오겠죠. (웃음) 음악적으로 고민도 많아서 이것저것 해보고 배워보고 있어요.
어떤 고민이 있으세요?
요즘은 음악이 너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와중에도 똑같은 걸 하고 싶지 않고, 더 잘하고 싶고, 그러면서도 좋게 만들어야 하고. 그런 고민을 늘 해요. 매번 고민하는데 갈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윤석철트리오의 곡을 보면 제목이 특이한 곡이 많죠. ‘과속 금지’, ‘여대 앞에 사는 남자’, ‘어쩌려고 그런 말을 해’, ‘그의 걸음걸이는 이상해’ 등등. 참 독특하고 재밌고, 그러면서도 인상 깊은 이런 제목은 어떻게 짓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목을 신중하게 짓는 편이에요. 음원 사이트에 검색했는데 같은 제목의 곡이 너무 많이 나오면 좀 차별성이 없잖아요. 예를 들어 ‘독백’이라고 해도 독백이라는 의미를 담아낸 뭔가 다른 제목으로 어필하는 걸 좋아하죠. 그래서 저는 음원 사이트에 검색해 보고 같거나 비슷한 제목이 나오면 바꿔요.
다음 앨범에서도 이런 제목을 만날 수 있겠군요.
아마도 그렇겠죠? 제 음악은 연주곡이다 보니 제목에서 일단 의미를 전달하고, 듣는 사람이 음악을 들으면서 이걸 해석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목이 너무 단순하면 의미를 찾기가 좀 힘들어요. 가사가 없으니까요. 제가 정말 신경 써서 짓고 있습니다. (웃음)
그럼 처음에 곡을 쓸 때부터 어느 정도 제목과 이야기를 구성하시는 편인가요?
반반이에요. 좋아하는 문구나 뭔가 좀 신선한 글귀, 단어 같은 게 있으면 적어놔요. 그러면서 제목을 만들고 곡을 쓰기도 하고, 아무 생각 없이 곡을 썼는데 그 곡에서 어떤 아이디어나 의미가 떠오르면 그 의미에 맞춰서 제목을 짓는 경우도 있죠.

최근 몇 년 사이의 경향을 보면 대중 사이에서 재즈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낍니다. 관련한 유튜브도 잘 되고, 페스티벌에도 수많은 관객이 몰리죠. 아티스트의 입장에서도 재즈의 인기가 실감이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월요일마다 에반스에서 잼 세션을 하거든요. 예전에는 월요일엔 관객이 별로 없었어요. 근데 요즘은 월요일인데도 관객이 많아서 주말 분위기가 나더라고요. 20, 30대 관객이 가장 많고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도 많이 오시죠.
잼 세션을 하면 즉흥 연주도 많이 하실 것 같은데요, 보고 있으면 어디까지가 즉흥인지, 어느 정도는 준비도 하시는지 그런 게 궁금하더라고요.
멀리서 보면 다 즉흥일 것 같지만, 어느 정도 짜여 있는 부분도 있어요. 유명한 스탠더드 재즈 넘버를 연주할 때는 예를 들어 그 멜로디가 32마디라고 하면 어느 정도 그 형식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플레이를 하죠. 솔로 연주도 ‘비밥 스케일’ 같은 재즈의 언어가 있거든요. 그 언어에도 규칙이 있어서 그 규칙 안에서 왔다 갔다 하는 거라 면밀히 얘기해서 이게 정말 즉흥 연주인가 하면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제 입장에서 정말 즉흥 연주는 1970년대 프리재즈라고 부르던 그런 것들이 정말 즉흥 연주라고 생각하죠. 일반인이 듣기에는 잼 세션에서, 혹은 재즈 클럽 공연에서 연주되는 모든 것들이 즉흥 연주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요.
잼 세션에서는 주로 어떤 곡을 연주하시나요?
‘리얼 북’이라고 하는 책이 있어요. 재즈 스탠더드를 모아놓은 책인데, 종류가 많거든요.
‘송 북’ 같은 거군요?
맞아요. 그런 게 열 몇 권 되는데, 그걸 가지고 자주 연주하는 곡을 신청도 받고 하죠. 에반스는 외국 뮤지션이 서울에 놀러 오면 들리는 재즈 클럽 중 하나인데요, 프로 뮤지션도 오고 처음 시작하는 분들도 와서 같이 어우러지곤 해요. 엄청 좋은 연주를 들을 때도 있는데, 서로 민망한 연주를 경험할 수도 있죠. 이게 맞는 건가 싶게 흘러갈 때도 있는데, 그런 것도 다 재즈의 한 그림 중 하나예요. 자연스러운 거죠. 틀려도 ‘뭐 이렇게 지나가는 거지’ 하면서요. 재밌어요.

2020년에 ‘더 블랭크 샵’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내셨죠. 게스트 보컬들과 함께 프로듀서로서 만든 앨범이었는데요, 대중과 평단의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더 블랭크 샵으로의 새 앨범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더 블랭크 샵은 제 프로듀스 네임 같은 거예요. 재즈의 틀을 벗어나서 저만의 캐릭터를 만들고 전체적인 앨범을 프로듀싱하는 프로젝트 앨범이죠. 요즘에 더 블랭크 샵 다음 앨범도 준비하고 있는데 이것도 고민이 많아서요. (웃음) 왜 이렇게 고민이 많은지 모르겠어요. 열심히 만드는 중입니다. 만날 수는 있을 겁니다.
올해는 옥상달빛 세진 씨와 함께한 조찬 클럽 활동으로 바쁘셨을 것 같은데요. 두 분의 듀엣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도 해주시죠.
세진 누나랑 제가 술을 좋아해서 낮에 낮술을 먹으면 재밌겠다 하면서 술 마시면서 웃고 떠들고 얘기하다가 같이 작업이나 해볼까 하면서 만들게 됐어요. 이름은 그럼 조찬 클럽으로 하자고 하면서 웃고 술 마시면서 이게 진짜 만들어지려나 했는데 진짜 작업을 하고 EP를 내게 됐죠.
두 분 모두 곡을 쓰는 싱어송라이터인데, 이 작품을 만들 때는 어떤 식으로 분담하셨나요?
곡을 같이 썼어요. 매주 일요일에 만나서 서로 일주일 동안 숙제한 걸 비교해 가면서 피드백을 주고받고, 그렇게 4곡 정도를 추려서 가사도 붙이고 서로 가사 쓴 것도 비교하고 그러면서 만들었죠. 두세 달 정도 열심히 만든 앨범이에요.
낮술을 마시다가 이 앨범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다고 하셨는데, 마침 타이틀곡 제목도 ‘칵테일 파라다이스’죠. 왠지 이 작품이 알코올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 같은데요.
완전히 있었죠. ‘칵테일 파라다이스’라는 곡을 쓰게 된 것도 서로 술을 좋아하기 때문이었어요. 우리 다 술을 좋아하니까 술에 대한 곡을 쓰자고 했죠. 그래서 가사에도 ‘아이리시 커피’, ‘피나콜라다’, ‘모히또’ 같은 칵테일 이름이 나와요. 일단 모르겠으니까 칵테일 이름부터 좀 적어봐 하다가 가사에 들어간 거죠. 그리고 끝나고 이제 또 술 마시러 가고. (웃음)
그렇게 하고 술 마시러 가면 주로 주종은 뭐였나요?
저는 위스키였고 세진 누나는 와인이었어요. 저는 와인에 대해 처음엔 잘 몰랐는데, 세진 누나가 맛있는 걸 추천해 주면서 점점 와인에 눈을 떴죠. 위스키는 한창 그 앨범 만들 때 빠져 있어서 정말 많이 마셨고요.

‘칵테일 파라다이스’가 타이틀곡이 된 이유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세진 누나와 앨범을 만들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장르가 브라질 음악, 보사노바, 라틴 음악을 하자는 거였어요. ‘칵테일 파라다이스’가 그런 라틴 성향의 곡이거든요. 앨범이 나왔던 봄, 여름쯤에 잘 어울리는 신나는 곡이기도 했고, 후렴에서 외치는 ‘한 잔 더!’ 같은 훅 파트도 있어서 듣기 편한 곡이라 타이틀곡이 됐어요.
유튜브를 보니 ‘원 샷 원 트랙’이라는 콘텐츠를 하셨더라고요. 위스키를 마시고 맛을 표현하고 곡을 작업하는 내용인데, 인상 깊게 봤습니다. 이건 어떻게 하시게 된 건가요?
위스키를 좋아하게 됐는데, 그래도 사람이 술만 마시지 말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뭐라도 남기자는 거죠. (웃음) 그 콘텐츠를 할 때부터 세진 누나와도 얘기가 오가며 조찬 클럽이 빌드 업이 된 것 같아요. 그때는 위스키를 한창 알아가면서 ‘피트’니 ‘쉐리’니 ‘블렌디드’니 이런 것들이 정말 재밌을 때였거든요. 이건 어떤 맛일까, 저건 어떤 맛일까 그러면서 재밌게 마셨죠.
그럼 위스키 초심자를 위한 입문용 위스키 몇 개만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일단 제일 쉽게 찾을 수 있는 건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거니까요. 그렇다면 ‘제임슨’이죠. 가격대도 저렴한 편이고, 뭔가 부드럽고 하이볼로 타서 먹기에도 알맞아요. 또 하나는 ‘메이커스 마크’요. 빨간 왁스로 된 뚜껑이 시그니처인데, 이런 종류의 위스키는 버번위스키라고 하거든요. 좀 더 달콤한 향과 맛이 있어서 그쪽으로 시작해 보시면 좋죠. 처음부터 비싼 걸 먹는 것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쪽으로 시작하는 편이 좋아요. 먹다 보면 맛을 알게 되니까요.
맨정신에 음악을 만들 때와 약간 술이 들어가서 취기가 살짝 올라왔을 때 작업하는 게 차이가 있나요?
확실히 있어요. 장단점도 있고요. 술을 마시면서 한다고 다 잘 되는 건 아니에요. 그날의 컨디션이나 그날의 기운이 술과 만나서 알딸딸해지면서 맞으면 좋은 건데, 안 맞으면 오히려 작업이 더 안 되죠. 요즘 저는 그냥 맨정신으로 머리가 맑을 때 하는 게 가장 좋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은 술을 작업실에서 안 마시고 작업 깔끔하게 다 끝내고 집에 가서 편한 마음으로 마시죠.
이번에 조찬 클럽 앨범에서 노래도 직접 부르셨는데요. 지금까지 많은 작업을 했지만 이렇게 보컬을 전면에 내세운 건 사실상 거의 처음이 아닌가 싶어요. 노래하면서 어떠셨어요?
저는 원래 처음에는 노래를 안 하려고 그랬어요. 프로젝트 앨범 낸다고 하니까 나는 곡 쓰고 만들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세진 누나가 제가 노래해야 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웃음) 노래가 제 본업이 아니니까 처음엔 정말 하기 싫었는데, 막상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불러보고 하니까 이렇게 만드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그냥 연주곡으로만 하는 것과 곡을 만드는 방법 자체가 다르니까 색다른 매력을 느끼기도 했고, 보컬로서 보컬의 관점에서 곡을 다시 보기도 했어요.
세진 씨가 조언한다거나, 약간의 코칭을 하는 것도 있었나요?
응원과 코칭과 잔소리를 했죠. (웃음) 워낙 친한 사이라 좀 부족하거나 한 부분을 잘 짚어주고 도와줬어요.
저는 석철 씨의 노래하는 목소리가 너무 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그런 톤을 갖고 계신 줄 몰랐거든요.
피아노 연주 잘한다고 하면 아무렇지도 않은데, 목소리 좋다, 노래 잘한다 이러면 어디 쥐구멍에 숨고 싶어요. (웃음) 그래도 기분은 좋습니다.
조찬 클럽의 앨범은 믹싱도 직접 하셨더군요. 예전에는 다른 분이 하기도 했는데, 이렇게 직접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믹싱은 쉽게 말해 곡을 만들면서 내가 이 곡을 어떤 의도로 만들 것인가를 확실히 해두는 작업이에요. 예를 들어 ‘피아노보다 드럼 소리가 더 컸으면 좋겠어’, ‘베이스는 저 멀리서 이런 식으로 들렸으면 좋겠어’. 그게 결국 작곡자의 의도잖아요. 근데 제가 요즘 만드는 곡들은 만들면서 믹스를 같이 해야 할 수밖에 없는 구조더라고요.
어떤 면에서요?
제 머릿속에 음악적인 아이디어가 있는데, 이걸 저 자신이 구현해야 사실 제일 잘 맞는 거거든요.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건 좀 이상하죠. 훌륭한 믹싱 엔지니어가 많지만, 제 머릿속에 있는 설계도를 똑같이 재현할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그런 과정을 좀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주변에 엔지니어 형님들에게 가서 조금씩 배우고 피드백도 받으면서 직접 하고 있어요.
믹싱으로 인해 곡의 감상이 완전히 새로워지기도 하잖아요. 직접하고 계시니까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도 더 높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같은 멜로디, 같은 가사라고 해도 완전히 다른 감상을 할 수가 있죠. 만족도가 훨씬 높긴 한데 앨범 작업하는 시간은 좀 오래 걸려요. 그래도 더 좋고 애착이 가요. 제가 100%에 최대한 가깝게 만족할 수 있으니까요. 이제는 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요.
수록곡 중 ‘소개팅이요?’라는 곡의 제목 역시 흥미롭습니다.
‘소개팅이요?’는 제가 멜로디와 가사를 거의 다 만들고 혼자 불렀어요. 처음에 멜로디를 만들고 세진 누나에게 들려주는데 누나가 이 곡을 들으니까 소개팅을 기다리는 남자가 떠오른다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별생각 없이 집에 갔는데 ‘소개팅’이라는 단어가 입력되니까 떠나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그러면 소개팅으로 가사를 한 번 써보자 하고 쓰는데 그 자리에서 거의 1시간 안에 다 썼나? 가사가 술술 나왔어요. 그렇게 탄생한 곡이죠.
‘치앙마이’는요?
저와 아내가 치앙마이로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 웃고 떠들고 했던 이야기를 세진 누나에게 들려줬는데, 그게 너무 로맨틱하다고 가사로 영감받아서 좀 써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만들게 된 곡이에요.
두 분의 시너지 효과가 확실히 컸군요.
이 앨범은 세진 누나와 정말 오랫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도 만들고 그러면서 만든 작품이라 특히 애착이 가는 앨범이에요. 그냥 곡 만들고 노래만 쓱 부르고 하는 피처링이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죠.

요즘 이런 질문 진짜 많이 받으실 것 같습니다. ‘재즈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재즈라는 범위 자체가 너무 넓죠. 1920, 30년대 빅밴드 음악부터 해서 스윙, 하드밥, 비밥, 퓨전, 프리재즈 등 기술과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재즈도 같이 성장하고 계속 바뀌어 왔으니까요. 정말 많은 장르를 포함하고 있어서 카멜레온 같은 매력이 있거든요.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재즈를 더 좋아하는 거 아닐까 싶어요.
그럼 석철 씨가 처음 좋아하셨던 재즈는 어느 쪽이었나요?
처음 빠졌던 건 중학교 때 카시오페아(Casiopea), 포플레이(Fourplay), 티-스퀘어(T-Square) 이런 쪽이었어요. 스무스 재즈라고 불리는 것들을 좋아했죠.
그런 음악을 처음에 어떻게 들으셨어요?
그 당시에 소리바다 검색하면서 찾았죠. ‘재즈’ 검색하면 쫙 뜨잖아요. 그럼 이제 거기서 몇 개 이렇게 받는 거죠. 불법이긴 했지만 그땐 그런 시대였으니까요. 그렇게 받고 이것저것 들어보다가 안 좋은 건 지우고 하다보면 살아남는 게 카시오페아, 티-스퀘어 이런 팀이었어요. 그래서 그런 음악을 좋아했는데, 나중에 재즈를 배우려고 레슨을 받는데 레슨 선생님이 [라라랜드]의 라이언 고슬링 같은 사람이었어요. “이런 건 재즈가 아냐!” 하는. (웃음)
재즈는 유독 그런 성향이 있는 것 같아요. 순수 혈통주의랄까.
저도 옛날에는 그랬던 것 같아요.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비밥, 스윙 이 시대 재즈만 진짜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건 비밥, 스윙 음악이었던 것 같고요. 근데 조금씩 그런 것들이 깨지면서 힙합도 좋아하고 그랬죠.
얼마 전에 그래미상 후보가 나왔죠. 재즈 부문 후보 좀 보셨어요?
네 봤어요. 저는 솔직히 큰 관심은 없어요. 그래미 수상작들은 조금 보수적이거든요. 칙 코리아(Chick Corea)가 항상 받는다든가. (웃음) 요즘 미국이나 유럽 쪽에서도 좋은 앨범이 너무나 많이 나오고 젊은 뮤지션들도 획기적인 앨범을 많이 내는데 정작 받는 건 늘 거장의 앨범들인 경우가 많으니까 좀 재미가 없다고 할까요.
그래미는 확실히 전통적인 것에 대한 대우가 여전히 강하죠. 요즘 재즈의 흐름은 좀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요즘은 연주자와 프로듀서를 겸하는 아티스트가 많은 것 같아요. 곡도 좀 더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로 만들고. 이제는 맥북 들고 다니면서 바로바로 녹음도 하고 믹스, 마스터링 전부 혼자서 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저도 믹싱을 하는 것처럼요. 예를 들어 도미&제이디 벡(DOMi & JD BECK)이 같이 만든 [NOT TiGHT]라는 앨범이 있어요. 이건 제이디 벡이라는 드러머가 그냥 집에서 드럼 녹음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만든 앨범인데 진짜 죽이거든요.
말 나온 김에 석철 씨가 생각할 때 정말 인상적인 요즘 재즈 5곡 정도만 추천해 주시죠.
우선 베이시스트 피노 팔라디노(Pino Palladino)가 2021년에 새 앨범을 냈는데, 그 앨범에 수록된 ‘Just Wrong’ 좋습니다. 그리고 애피페라(Apifera)라는 팀이 있어요. 이스라엘 출신 팀인데 음악이 재밌거든요. ‘Four Green Yellows’라는 곡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키보디스트 겸 피아니스트인 제이콥 만(Jacob Mann)이라는 사람이 있는데요, 이분이 [106]이라는 앨범을 낸 적이 있습니다. 악기 회사 롤랜드에 ‘주노 106’이라는 악기가 있는데, 80년대에 나온 빈티지 신시사이저거든요. 그 106에서 나오는 소리만 갖고 만든 앨범인데 정말 특이합니다.

앨범 커버가 정말 키보드 사진이네요. (웃음)
뭔가 B급 감성이잖아요 커버가. 그렇게 좀 위트도 있고 엉뚱한 매력이 있는 뮤지션인데요, 그 앨범 중에서 ‘Pier Walk’ 들어보시고요, 줄리우스 로드리게즈(Julius Rodriguez)라는 피아니스트의 ‘Midnight Sun’이라는 곡이 있는데요, 이 곡은 오래된 스탠더드 재즈 넘버예요. 저는 이 곡의 믹싱을 좋아해요. 왜냐면 보통 재즈 연주 음악에 이렇게 릴 테이프라든가 필터 같은 효과, 믹스를 잘 쓰지 않거든요. 딜레이를 갑자기 과도하게 거는 것도 그렇고요. 근데 이 곡에선 그런 것들을 하는데 그게 정말 멋있어요. 일반적인 재즈곡에 색다른 시도를 한 거죠. 연주도 훌륭하고요.
마지막으로 한 곡만 더 추천하신다면요?
그레첸 팔라토(Gretchen Parlato)라는 보컬리스트가 있어요. 미국을 대표하는 보컬리스트인데, 이분이 리오넬 루에케(Lionel Loueke)라는 기타리스트 겸 보컬리스트와 같이 앨범을 냈어요. 저는 그레첸 팔라토를 너무 좋아해서 그분의 앨범을 다 들었는데 한 번도 그래미에서 수상한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번에도 왠지 안 뽑아줄 것 같은데, 그래도 응원하는 마음으로 가져왔습니다.

석철 씨가 앞으로 해보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일단은 지금 제 온통 머릿속에는 지금 만들고 있는 앨범을 좋은 퀄리티로 만든다는 생각뿐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해보고 싶은 작업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데... 그런 거는 해보고 싶어요. 제가 예전부터 전자 음악 좋아하고 비트 있는 음악을 좋아해서 재즈 클럽 말고 그냥 완전히 하우스 클럽이나 그런 곳에서 공연을 한번 하고 싶어요. 그러면 거기 맞는 곡을 새로 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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