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윤 인터뷰
"2023년 같은 삶을 음악인으로서 남겨서 굉장히 영광이라고 생각해요."
이승윤 · 정민재 · 2023. 12. 14.
싱어송라이터 이승윤은 2023년을 자신의 해로 만들었다. 새해 벽두에 발표한 두 번째 앨범 [꿈의 거처]로 음악 관계자와 마니아의 주목을 한 몸에 받더니, 곧장 콘서트 투어에 돌입해 전국 각지의 팬들과 만났다. 올 한 해 열린 수많은 음악 페스티벌에도 부지런히 출연해 대중과 호흡했다. 틈틈이 라이브 콘텐츠를 만드는가 하면 앨범의 제작기와 콘서트 실황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고, 가을 앵콜 콘서트에 이어 연말 공연까지 진행했다. 완성도 높은 2집을 바이닐로 제작해 음악 감상회도 열었다. 앨범 한 장으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활동을 펼친 셈이다.
드러난 것만 해도 이 정도니 보이지 않는 곳에선 1년 내내 얼마나 분주했을까. 뮤브의 연말 결산 ‘2023 뮤브 어워즈’에서는 알차고 성실한 활동으로 귀감이 된 이승윤을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했다. 그는 연말 공연 준비로 분주한 와중에도 흔쾌히 뮤브를 찾아 그간의 활동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마침 데뷔 10주년이었던 올해를 돌아보며 그는 10년이란 인고의 시간 끝에 2023년 같은 해를 보낼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했다. 휴식 시간도 따로 없을 만큼 맹렬히 달리고 있다는 그는 자신만의 ‘꿈의 거처’를 이뤄가고 있는 듯 보였다.

2023 뮤브 어워즈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셨습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
일단 ‘올해의 아티스트’라는 수식어를 태어나고 처음 들어봐서요. 너무 영광입니다. 어떤 객관적인, 주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저를 불러주셨는지 모르겠지만, 선정기준이 너무 훌륭하다. 잘 뽑았다는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인 연말 결산, 시상식 시즌에 들어서는데요. 올해 좋은 앨범도 발표했고, 많은 활동도 있었고... 솔직히 어느 정도 기대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솔직히 전혀 기대가 안 됩니다. 가능성이야 누구에게나 있는 거지만, 기대는 안 하고 있어요.
연말 공연 준비로 바쁘시다고 들었는데요. 근황이 어떤가요?
10월 말까지 바빴고요, 11월에는 재정비도 하고 작업도 좀 하다가 오늘부터 공연 준비에 들어갑니다. 지금까지는 회의하고 여러 가지를 정리했고, 본격적인 연습을 시작하는 첫날이에요.
앨범 소개를 보니까 이런 말이 있더군요. “삶을 공허에게 전부 빼앗기기 전에 선수를 치자, 앨범이나 일단 내자, 그리고 그 앨범의 영혼을 전부 다 남김없이 쏟아내 보자, 그 이후에 내가 누군지 어떤 사람인지 이야기하자.” 어떤 의미였나요?
그 무렵은 제가 책임지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딱 마무리한 시점이었어요. 그때 그래서 ‘도대체 나는 뭐 하는 사람일까, 뭘 해야 내가 기쁠까, 뭘 해야 음악인으로서 행복할까’ 그런 고민이 많았죠. 고민을 정리하고 무언가를 하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릴 것 같고, 또 그 답이 정답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고민을 해결하기보단 일단 앨범이나 만들자, 앨범 만들면서 생각하자 그런 마음이었어요. 그런 시발점이 된 곡이 ‘꿈의 거처’였죠. 앨범을 만들면서 내 세계를 먼저 구축해야겠다, 그래야 내가 음악인으로서 이런저런 삶의 방향성을 가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꿈의 거처’는 2집 앨범의 제목이자 타이틀곡의 제목이기도 하죠. 어떤 곡인가요?
‘꿈의 거처’는 2집 앨범을 존재하게 해준 곡이에요. 우리가 보통 ‘꿈을 꾼다’, ‘꿈을 향해 나아간다’고 말하잖아요. 항상 그렇게 꿈을 향해 간다는 개념만 말하는데, 도대체 내가 꿈을 어디에 놔두고, 모셔두면서 살아야 할까 생각하면서 만들었던 곡입니다. 꿈이 꼭 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꿈에 도달하는 그곳이 내가 발 딛고 서는 여기니까 결국 지금의 여기가 가장 중요하다, 여기를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해야겠다는 의미죠.
앨범 작업에는 어느 정도 소요된 건가요?
작년 4월쯤부터 본격적인 앨범 작업을 했는데요, 구상을 한 건 1~2월부터였어요. 1년 정도 걸린 셈이죠.
앨범의 핵심 인물 중 한 분이 프로듀서 조희원 씨라는 생각이 듭니다. 승윤 씨와는 어떤 인연인지, 음악적인 하모니는 어떤지 궁금한데요.
저희는 각자 싱어송라이터로서 공연을 하다가 만난 사이에요. 그러다가 서로 음악이 너무 좋아서 밴드도 같이 했고, 지금은 작업실도 같이 쓰는 사이죠. 축구로 치면 안드레스 이니에스타처럼 중앙 미드필드에서 공을 여기저기로 완벽하게 킬 패스를 찔러주는 그런 선수고요, 제 음악을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게끔 시야를 제공해 주는 친구고, 포장지까지도 함께 도와주는 친구입니다. 제게는 폴 매카트니, 노엘 갤러거 같은 존재예요.
그럼 승윤 씨는 존 레논인가요?
저는 링고 스타죠. (웃음)
축구로 치면요?
축구장에서는 제가 마라도나랄까요. (웃음)
재밌는 비유네요. 아무튼 영혼의 파트너, 단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공들여 만든 앨범을 발표하고서 만족도는 어땠나요?
사실 처음부터 목표는 진짜 남김없이 후회 없이 다 해보자, 최선을 다해서 해보자는 거였어요. 복싱으로 치면 링 위에 올라가서 승패에 관계없이 내가 휘두를 수 있는 훅, 어퍼컷 다 날려보자는 거였죠. 생각한 대로 다 날린 것 같아서 잘했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유튜브를 통해 앨범 작업기 4편을 공개했죠. ‘Record Book’이라는 제목으로 앨범 제작 현장부터 아티스트와 앨범에 참여한 연주자들, 프로듀서, 엔지니어의 인터뷰가 100분이 넘는 분량으로 담겼는데요, 이런 다큐멘터리를 기획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제가 평소에 엄청나게 여러 가지 요구를 하는 사람은 아닌데요, 회사가 생기고 앨범을 내겠다고 한 뒤에 이건 꼭 갖고 싶다고 했던 게 레코드 북이었어요. 좀 디테일한 작업기를 내고 싶다는 부탁을 드렸죠. 음악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앨범을 만들 때 어떤 게 필요하고 어떤 요소와 어떤 사람들과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그런 게 참 막연했거든요. 이런 걸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창작자의 입장에서 생각했어요. 또 결과물을 내는 입장에서는 이렇게 많은 사람이 고군분투해서 한 장의 앨범이 나온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고요. 제 호흡으로 앨범에 대해 잘 설명할 수 있는 콘텐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죠. 여러 가지 생각을 갖고 만든 작업기였습니다.
영상에서 모든 코멘트마다 자료 화면이 있는 걸 보면서 이렇게 철저하게 준비했다는 것에 감탄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 보여줄 수 있었다는 건 매 순간 찍고 있었다는 얘기기도 하거든요. 이게 한편으로는 좀 부담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떠셨나요?
이게 제가 회사에 들어가서 함께 만드는 합작품이잖아요. 영상에서 전체적인 프로젝트를 잘 담아내고 싶어서 오히려 신경 안 쓰고 했어요. 작업하면서 불평하고 짜증 내고 욕하고 그랬던 건 걷어주시기도 했고요. (웃음) 만약 이걸 제가 곡을 쓰면서 촬영했다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곡을 다 쓰고 녹음 단계부터 찍었기 때문에 괜찮기도 했어요.
메이킹 영상에서 이런 얘기를 하셨죠. “표준화되지 않은 앨범을 만들자”, “연주가 좀 투박하더라도 이게 내 음악이다”. 왠지 승윤 씨는 아주 매끈하고 잘 세공되어 있는, 쉽게 말하면 기성 음악처럼 보이는 것을 경계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저는 ‘표준화’라는 것에 대한 존경심이 있습니다. 표준화는 괜히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다만 이게 제 언어로, 제 감정으로 만든 음악이 표준화됐을 때 제가 재밌어할까, 혹은 그게 잘 담길까에 대한 의문이 있어요. 그래서 제 친구들과 저희끼리 만들어봤던 거고요. 표준화 자체를 경계한다기보단 ‘매력 있게 표준화할 자신이 없었다’가 더 정직한 표현일 것 같아요.
그래서 승윤 씨와 함께한 멤버들이 재밌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는 얘기를 하신 거군요.
연주 같은 경우도 정말 잘 쳐주면 좋은 부분이 있는데, 어떤 부분은 너무 잘 쳐서 오히려 현란하게 느껴질 때도 있거든요. 음악을 배운 분들끼리는 ‘우와!’ 이러는데 음악을 안 배운 제가 볼 때는 기교를 부린다는 느낌. 그런 건 안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를 했는데, 그래서 한 번씩 연주자들이 농담으로 크레디트에서 빼달라, 이건 좀 부끄럽다 그런 얘기도 했어요. (웃음)
인터뷰 중 “약간 공허함이나 고민 같은 것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을 때 앨범 작업하는 게 심적인 자유를 줬다. 그래서 앨범 작업을 하는 게 내 인생을 살았다고 표현할 수 있다.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앨범이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밴드 멤버들은 승윤 씨가 누구보다 곡을 많이 쓰는 사람이라고 얘기를 하기도 했는데, 곡을 쓴다는 게 승윤 씨에게 어떤 의미인지도 궁금합니다.
제가 별로 하고 싶은 게 없어요. 관심사도 많이 없고요. 근데 음악을 할 때 인생을 산다고 느끼고, 음악을 할 때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나 내 발달 과업을 잘 수행하면서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이승윤이라는 인간으로서 삶의 보람을 음악을 할 때 가장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음악을 할 때 인생을 산다고 표현하는 거죠. 그게 ‘세상을 산다’는 거랑은 좀 다른데... 세상도 좀 살긴 살아야 하는데 생각도 합니다.
그 말은 세상사의 일들, 세상의 돌아가는 일들과 현재의 승윤 씨가 적극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진 않다는 의미일까요?
네, 제가 음악을 하는 방식은 세상과 조금 등을 져야 해서... 그 균형이 필요할 것 같아요.

곡을 쓰는 시간이 고통스럽거나 하진 않으세요?
곡을 완성시켜야 할 때가 고통스러워요. 아이디어를 막 던질 때는 너무 재밌거든요. 근데 데모를 완성해야 하거나, 음원을 완성해야 하는 단계에 갔을 때는 어렵죠. 러프하게 곡을 만드는 건 즐겁게 하는 편이에요.
승윤 씨가 쓰신 곡을 보면 후렴에 힘을 주고, 클라이맥스를 염두에 둔다는 생각이 듭니다. 떼창 포인트 같은 것들도 보이고요. 자신의 작법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제 작법을 정의해본 적은 없는데요, 의도하진 않았어도 만들다 보면 좀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점진적인 음악을 좋아해요. 반복적인 것도 좋아하고요. 브릿 팝의 영향이 있을 수도 있겠죠.
승윤 씨가 직접 쓴 가사나 제목, 앨범에 수록된 라이너 노트 같은 것들을 보면 참 재치 있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혹시 글 쓰는 일에도 흥미가 있나요? 나중에 시집이나 산문집을 내도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글을 쓰는 분에 대한 선망은 있는데, 제가 되어야지 하는 마음은 없어요. 혼자 쓰는 건 괜찮은데 보여주는 게 부끄러워요. 제 글이 약간 횡설수설하는 편이어서 산문집까지는 좀 빡셉니다. (웃음)
승윤 씨의 가사에 대해 개성이 강하다, 상투적이지 않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직관적이지 않다,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사를 쓸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개성이 강하다’, ‘상투적이지 않다’, 한편으로는 ‘직관적이지 않다’, ‘어렵다’는 평을 받는 데 중점을 둡니다. (웃음) 사실은 그냥 딱 ‘이승윤 가사 같다’는 느낌을 구축하고 싶어요. 세상에는 깊이 있는 가사도 있고, 가볍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사도 있지만, 둘 중에 제가 진짜 잘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거든요. 그냥 이승윤스러운 가사를 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수록곡 중 잠비나이의 이일우 씨가 참여한 ‘야생마’, 가사가 심오한 ‘웃어주었어’가 특히 인상적입니다. 어떤 곡인지 소개해 주신다면요.
‘야생마’는 이일우 님께서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담당하신 곡입니다. 사실 그거 들으려고 들으시는 노래예요. (웃음) ‘웃어주었어’는 제가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너무 만들고 싶었던 종류의 음악입니다. 정말 작은 마음을 노래하는 거창한 곡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지난 1월에 앨범을 발표한 이후 거의 1년 동안 쉼 없이 활동하셨죠. 전국 투어부터 해외 공연, 각종 페스티벌과 라이브 콘텐츠, 바이닐 발매 기념 감상회와 연말 공연까지. 귀감이 되는 활동이었는데, 승윤 씨는 활동을 쭉 하면서 소기의 성과를 거뒀다고 보시나요?
앨범이 막 그렇게 유의미한 시대는 아니지만, 앨범을 갖고 이렇게 긴 호흡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내가 맞고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생각하면서 1년을 살았어요. 사실은 회사와 계약할 당시에 앨범을 무작정 싸 들고 갔거든요. 일단 내야 하는 상황이었던 거죠. 그래서 디테일한 전략을 가지고 움직인 건 아니었는데, 앨범을 정말 열심히 만들었기 때문에 이 앨범으로 최대한 많은 걸 했으면 좋겠다는 회사 분들의 마음이 있었어요. 앨범을 내고 팬 분들과 전국 투어를 다니고, 이후에 외부 활동을 하고, LP를 내야겠다는 건 꿈도 못 꾸고 있었는데 그런 기획도 해주시고... 덕분에 1년 단위의 활동이 되었습니다.
유튜브에 앵콜 콘서트 [DOCKING]의 실황 영상을 공개한 것도 인상 깊었습니다. 2시간 반에 달하는 공연을 유튜브에 그대로 올렸는데, 얼마든지 유료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무료로 공개한 게 놀라웠습니다. 요즘은 영화로 개봉하는 경우도 많고 OTT 서비스 등을 통해 판매하기도 하고요.
이건 제 의도였어요. 우선은 아무도 이렇게 안 해서 그냥 한 번 해봤고요. (웃음) 두 번째는 이런 영역의 음악을 하는 공연에 대한 오픈 소스를 유튜브라는 플랫폼에서 제공하고 싶었어요. 동료 뮤지션들과 대중, 그리고 저와 비슷한 음악을 하려는 사람들에게요. 보통 공연 전체 영상은 2년 뒤쯤 푸는 게 일반적인데 지금의 공연을 푸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았어요. 세 번째 이유는 팬 분들이 살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뭐 이렇게 맨날 사야 하나 싶었죠. 사실 말씀하신 것처럼 극장 개봉도 고려했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제가 잠깐 나오는 [듣보 인간의 생존 신고]라는 다큐멘터리가 딱 그 시기에 개봉했어요. 그래서 그냥 우리 거는 공짜로 가자, 대신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 했죠.
올해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을 비롯해 수많은 페스티벌 무대에 올랐죠. 돌아보면 어떠셨나요?
솔직히 말하면 제가 너무 즐겼습니다. ‘내가 이렇게 재밌어해도 되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관객보다 제가 더 재밌게 즐긴 것 같아요. 작년에는 처음이라 ‘내가 이런 무대도 선다니’ 이런 벅찬 마음이 컸다면, 올해는 작년보다 재밌게 즐겼죠.
승윤 씨 음악 인생의 출발점으로 돌아가 보죠. 음악은 어떻게 시작하신 겁니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 그럴듯하게 꾸며내려고도 해봤지만... 그냥 학교에서 인기가 많아지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그게 다였어요. ‘인기 짱’이 되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웃음)
그럼 학교에서 밴드 활동을 했다거나 음악 활동을 했나요?
포부와는 다르게 제가 내성적이라서 밴드 같은 데는 못 들어갔어요. 또 당시에 밴드를 하던 친구들이 좋아하는 음악과 제가 좋아하는 음악이 달랐거든요. 저는 오아시스, 유투, 콜드플레이, 트래비스 이런 브릿 팝의 ‘강성 빠돌이’였는데, 친구들은 엑스 재팬... 아니면 린킨 파크 같은 미국 록을 좋아했어요. 결이 달라서 섞이지 못 했죠. 그냥 혼자서 기타 연습하고 연주하고 그랬어요.

오래 전 한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하셨더군요. 2017년부터 아르바이트도 그만두고 음악에 전념했는데, 그 이유가 ‘못 이뤄놓고 꿈을 꾼 적이 없는 척하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서’. 사실 생업을 그만두고 음악으로 전업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데요. 그 당시에는 어떤 각오, 포부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과거를 과장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는 어른이 멋있더라고요. 근데 그 당시엔 이렇게 살다가는 과거의 작은 일을 뻥튀기하면서 ‘옛날엔~’, ‘왕년엔~’하는 어른이 될 것 같더군요. 그래서 음악에 투신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든 직종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은 그래도 한 번 목숨을 걸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영역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발만 걸치는 건 이제 그만하고 아예 뛰어들자 다짐했던 거죠.
12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연말 공연 [뒤끝]을 여시죠. 어떤 공연을 준비하고 계신지, 관전 포인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제가 앵콜 콘서트를 할 줄도 몰랐고, 연말에 공연을 할 줄도 몰랐어요. 경솔하게 앵콜 공연 때 이번 공연이 진짜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또 공연을 하게 되어서 이번 공연은 뒤끝 한 번 제대로 재밌게 부리고 끝내자는 의미로 지었죠. 이로써 이번 챕터를 잘 마무리하자는 의미도 있고요. 그래서 관전 포인트라기 보단 제가 요즘 새 앨범 작업을 하고 있거든요. 앨범이 나오면 세트 리스트가 또 바뀔 테니까 최대한 여러 곡을 3일에 걸쳐서 부르려고 해요.
승윤 씨의 맹렬한 활동을 지켜보면서 너무 쉼 없이 활동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들었거든요. 컨디션 관리는 어떻게 하시는지, 휴식할 때는 뭘 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컨디션 관리는 안 합니다. 일단은 무작정 달리고 있어요. 지금은 제가 숨이 차더라도 달려가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다음까지만 딱 달리려고 하고요, 휴식 시간에도 작업하고 있습니다. 다음 앨범까지만 하고 진짜 쉬려고요. 사실 [뒤끝] 공연 끝나고 2주 정도 어디 갈까... 지금 이 말만 몇 번째예요. (웃음) 지금까진 계속 시도만 하고 실패했는데, 이번에는 진짜 2주 정도 어디 다녀올까 생각은 하고 있습니다.
요즘 승윤 씨가 즐겨 듣는 음악은 무엇인가요.
뉴진스와 르세라핌의 음악을 많이 들어요. 많이 들려서 듣다 보니 좋아서 더 듣게 되었어요. ‘Hype Boy’와 ‘이브, 프시케 그리고 푸른 수염의 아내’. 이럴 때 또 남들 모르는 가수 얘기해야지 그런 욕망도 한 번씩 들기도 하지만, 솔직히는 뉴진스와 르세라핌입니다. (웃음)
승윤 씨를 보면 왠지 철저하게 계획하고 준비하기보단 즉흥적이고 순간순간 느낌에 따르는 타입일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너무 그런 편이에요. 뭔가 순간 번뜩이는 거를 딱 할 때 그 기분을 좋아하거든요. 그게 꼭 잘되지 않아도요. 좋은 의미로는 즉흥적이지만, 같이 일하는 분들 입장에서는 변덕일 수가 있어서 감사함과 죄송함을 번갈아 가며 느끼죠.
그럼 지나고 돌아보면 그렇게 즉흥적으로 했던 일들이 만족스러운 결과로 이어졌나요?
아직까진 다행히 그렇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그냥 무난히 잘했으면 그 장면들이 기억나지 않겠죠.
승윤 씨의 요즘 고민은 무엇인가요?
세상을 좀 살아야 하는데 너무 개인 이승윤으로만 살고 있어서요. 균형을 잡고 세상을 살 타이밍을 잡아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요즘 세상사 같은 것들에 대해서 너무 무지해요. 지금 모든 게 작품을 위해서만 살고 있어서 한 명의 시민으로서 더불어 살아갈 고민을 해요. 근데 한 편으로는 아직은 작업이 너무 재밌어서요. 저 사람도 안 만난 지 진짜 오래됐어요. 카톡만 하고. (웃음) 저는 만약에 약속을 한 달 전쯤 잡으면 그게 되게 먼 얘기라고 생각하고 잡거든요. 근데 한 2주, 일주일 앞으로 다가올수록 조금 부담? 만나면 좋아요. 너무 재밌고 좋은데 만나기 전이 좀 부담스러워서 큰 결심이 필요합니다.
그럼 즉흥적으로 만나는 건 어떤가요?
제가 그 분야에서는 또 즉흥성을 싫어하는 것 같아요. (웃음) 만남은 좋은데 만나기까지 과정이 힘들어요.

승윤 씨에게 2023년은 어떤 해였나요?
저는 2023년 같은 삶을 음악인으로서 남겨서 굉장히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한 한 해였어요.
올해는 승윤 씨의 활동 10주년이기도 했습니다. 2013년에 첫 싱글을 내셨죠.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소감이 어떤가요?
몇 주년, 몇 주년 하시는 선배님들이나 다른 분야의 분들이 ‘시간이 벌써 이렇게 흘렀다’, ‘눈 깜빡할 사이에 흘러갔다’ 이런 표현을 많이 하시잖아요. 저는 너무 더디게 흘렀어요. (웃음) 너무너무 길었고요. 10년 너무 길었다! 그러나, 그래도 재밌었다.
승윤 씨에게 지난 10년은 인고의 시간이기도 했겠군요.
그렇죠. 인고의 시간이기도 했는데, 어쨌든 꿈을 추상적으로 막연하게 꾸다가 실제로 투신도 했다가 약간의 성취를 얻었다가... 이런 것들을 긴 호흡으로 얻었잖아요. 이걸 초창기에 한 번에 얻었다면 이렇게 사고하면서 살진 않았을 것 같아요. 어릴 때 잘 안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10년을 점진적으로 잘 채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승윤 씨가 그리는 이 시간 이후의 챕터는 어떤 모습인가요?
보통 아티스트, 창작자분들의 주기표를 보면 한 3집쯤 됐을 때 자의식 과잉으로 한 번 가거든요. 저도 자의식 과잉 한 번 해야죠. 다 필요 없고 자의식 과잉! 이거 지금 아니면 못 하고 나중에 후회하게 될 테니까요. 나이 들면 사회적 지위와 명성, 시선 같은 것들 때문에 못 하게 되니까 지금 해야겠다 생각해요. 일단 이번에는 말 안 듣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자의식 과잉 좀 하겠습니다. (웃음)
앞으로 아티스트로서, 또 한 명의 사람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2024년 뮤브 어워즈 올해의 아티스트에 또 선정되는 겁니다. 2년 연패를 하고 싶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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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회 — 뮤브 선정 '2023 올해의 아티스트' 인터뷰 with 이승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