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티스 림 인터뷰
"진짜 나를 찾고 가면을 벗었어요"
오티스 림 · 정연경 · 2026. 7. 14.
약 2년 전 오티스 림은 한국 ‘알앤비’ 유망주로서 뮤브에 한 차례 방문했다. 반려동물과 관련된 플레이리스트에 어느샌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우리집 강아지 귀여워’를 필두로 그만의 감성이 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바로 그때. 차마 뒷사정을 묻지 못하고 넘어간 곡이 하나 있었다. 바로 ‘FEELING!’. 난데없이 제임스 브라운을 표방하며 화려한 신시사이저 아래 흐르는 디스코 펑크 비트에 맞춰 목을 긁고 애드리브를 하는 오티스 림은 확실히 ‘요즈음’의 트렌드와는 결이 달랐다.
‘FEELING!’이 단초였을까. 2024년 싱글 ‘JAMI’에 이어 EP를 통해 드러낸 조지 클린턴을 향한 음악적 헌사까지, 오티스 림의 펑크(Funk) 사랑은 해가 갈수록 깊어졌고 마침내 그는 장르의 전령이 되어 [사생아]라는 문제작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음악의 사생아임을 자처하며 트렌드의 최전선에서 돌연 60년 전으로 회귀해버린 오티스 림. 시차를 뛰어넘은 그에게서 펑크의 미래를 묻는다.

정규 2집 [사생아]를 발표했습니다. 간단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에게는 1집 같은 앨범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음악을 하면서 아티스트로서의 갈증과 고민들이 있었는데요. 이 앨범을 통해서 많이 해소했어요. 비로소 본래의 저를 발견한 느낌이기도 하구요. 항상 음악을 만들면서 어딘가 찝찝한 기분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사생아]를 발표하고 처음으로 그 감정들이 해소가 된거예요. 앞으로 제 음악 활동에 있어서 큰 변환점이 될 앨범 같아요.
앨범 제목이 강렬한데. 부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이 단어를 타이틀로 채택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사생아’라는 단어를 생각했을 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를 떠올렸어요. 그런데 생각하고 보면 예술에서는 역사적으로 그런 존재들이 새로운 문화를 가져오고 혁명적인 변화를 이끌어냈거든요. 그런 점에서 제가 갖고 있는 포부, 야망, 음악적 방향성을 ‘사생아’라는 단어가 잘 드러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원래는 1970년대처럼 제 이름을 타이틀로 하려고 했는데요, 그러기엔 제가 이 앨범을 만들면서 스스로를 마주한 시간이 길고 깊었어요. 그 깊이를 감당해 낼 단어가 필요했던 거죠.
앨범 커버도 특이해요. 두 남녀와 외계인이 있는 그림인데.
제가 펑크(Funk)라는 장르를 가져오면서 가장 유의했던 점 하나가 ‘촌스럽지 않을 것’이었어요. 장르 자체가 자칫하면 촌스러워질 수 있거든요. 대신 세상에 신선함을 주고 싶었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비주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가 평소에 너무나 좋아하던 프랭크 도레이(Frank Dorrey)라는 작가한테 그냥 바로 이메일을 보냈어요. 저와는 접점이 아예 없는 월드 클래스 디자이너인데, 무조건 작업을 맡기고 싶었거든요. 제 개인적인 이야기, 만들어둔 음악을 다 보냈는데 너무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그렇게 좋은 기회로 진행하게 됐죠. 7월 중으로 바이닐도 나올 것 같습니다.
2024년 RSS 페스티벌에서 오티스 림의 무대를 봤을 때는 이미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이 있어 보였어요. 기존의 음원과는 완전히 달랐거든요. 그런데 이제서야 펑크(Funk) 앨범을 만들게 된 계기가 따로 있나요?
[Playground] 앨범 내고 원래는 또 알앤비 앨범 하나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정규 앨범이었고 10곡 넘게 이미 완성이 되어있었는데.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갈증이라는 게 항상 느껴졌어요. 알앤비를 물론 사랑하지만, 제가 10년, 20년 이렇게 끌고 갈 음악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 음악을 “이게 나야”라면서 계속하는 것도 너무 건강하지 못한 것 같고, 듣는 사람들도 그걸 다 느끼겠더라구요. 이대로 가다가는 한계가 빨리 올 것 같았어요. 그래서 과감히 준비하고 있던 알앤비 앨범을 버렸는데, 또 마침 노트북이 망가졌어요. 기존 작업이 완전히 다 날아간 거죠. 기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가자는 식으로 [사생아]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펑크(Funk)도 그렇고, 국내에서 블랙 뮤직을 하는 뮤지션들이 사실은 쉽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그럼에도 이 길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앨범을 만들면서 저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였어요. 기존에는 내가 어떤 사운드를 만들어야 사람들이 좋아할까 라는게 중요했다면, [사생아] 작업하면서는 그런 건 다 집어치우고 내 안의 소리를 찾는 게 중요해졌어요. 진짜 내 이야기를 탐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제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떠올리게 됐어요. 저는 펑크(Funk)를 좋아해서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음악을 하자는 결심이 섰고, 이 장르를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만 생각하고 만든 앨범인 거죠.
민재 씨한테 음악을 보내면서 “집중해서 들어달라”라고 하셨다면서요. (웃음)
좋게 들어달라는 의미는 아니었고요.(웃음) 진짜 저를 구석에 몰아넣고 들여다보려고 노력하고… 그렇게 해서 탄생한 소중한 이야기들이라서, 누군가 이걸 들을 때 정말 집중해서 들어줬으면 했던 거예요. 동료들이 제 신곡 들려달라고 하면 휴대폰으로 절대 안 들려줬어요. 이건 너무 나에게 소중한 음악이라서 제대로 들을 수 있는 환경에서 들려주고 싶다는 마음인 거죠.
김윤하 평론가가 쓴 [사생아] 라이너 노트를 보면 ‘가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오티스 림에게 이 가면들은 뭘 의미하나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면은 저에게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된 거예요. 음악을 만들 때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음악, 내 안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고자 했어요. 그런 태도를 “가면을 벗었다”라고 표현한 거죠.

그럼 언제부터 펑크(Funk)를 좋아하게 된 건가요?
고등학생 때부터 흑인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어요. 마이클 잭슨으로 시작했는데 더 깊은 펑크 음악들이 있었고 펑카델릭(Funkadelic)까지 가게 됐어요. 거기에 중독이 되어버렸어요. 제 뿌리를 찾다가 펑크를 할 때 내가 행복하다는 걸 깨닫고 [사생아]까지 만들게 된 것 같아요.
오티스 림이 생각하는 펑크의 매력은?
펑크라는 용어 자체가 미국에서는 땀 냄새라던가, 육체적인 의미가 있는 단어였거든요. 그런 원초적인 날 것의 감정도 매력이 있지만, 저는 펑크가 주는 특유의 해방감과 애환이 좋았어요. 그걸 또 신나게 표현하잖아요. 여러분, 왜 펑크 안 좋아하세요? 얼른 펑크 하세요! (웃음) 저는 이 앨범이 성공하는 걸 넘어서 펑크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주변에도 가스라이팅을 하거든요. 펑크 잘 되려면 나 혼자서는 안 된다, 우리 다 같이 움직여서 펑크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사생아]는 펑크를 중심으로 하긴 하지만, 여기엔 뉴웨이브나 크라우트 록, 심지어 이박사 스타일의 뽕도 있어요. 이런 사운드는 어떻게 구상했나요?
저는 세상에 없는 걸 만들고 싶었어요. 누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오티스 림만 할 수 있는 것을 만들고 싶었죠. 근데 세상엔 이미 좋은 것들이 많이 나와있고… 어렵더라구요. 그래도 정말 내 개인적인 사운드라고 하는 것들을 최대한 생각하면서 만들려고 한 것 같아요. 그런 과정에서 [사생아] 앨범도 한 번 만들었다가 완전히 엎었어요. 라이브 준비를 같이 했는데, 라이브 편곡을 하면서 예상하지 못한 아이디어들이 너무 많이 나오더라구요. 그래서 타협하지 않고 100% 만족할 때까지 집착하고, 엎고, 편곡하고, 재녹음하면서 완전히 새롭게 다시 만들었습니다.

참여한 뮤지션들도 많아요. 김간지, 나잠수, 신세하, 조정치, 옴노스테레오 등. 특히 옴노스테레오가 앨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 같은데요.
옴노스테레오가 [사생아] 앨범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습니다. 편곡이나 프로듀싱 영역에서 처음으로 제가 뒤로 물러선 작품이에요. 이 친구가 정말 대단한 아이디어와 음악력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전 하고 싶은 것들을 쏟아내고, 음악적인 표현은 옴노스테레오한테 맡긴거죠. 덕분에 진보적이고 실험적인 저만의 컬러를 찾을 수 있었어요. 어떻게 보면 옴노스테레오가 이 앨범의 본체라고도 할 수 있어요.(웃음) 신세하 씨 같은 경우에는, 제 앨범에 너무 필요한 분이라고 생각해서 바로 DM을 보냈어요. 흔쾌히 수락해 주셔서 작업에 들어갔죠.
[사생아] 수록곡 중에서 가장 먼저 들어줬으면 하는 곡이나, 가장 만들기 힘들었던 노래가 있다면요?
우선 (Let me go) Nana라는 곡을 추천합니다. 일렉트로닉이 가미된 음악이고, 여태껏 들어보지 못한 형태의 펑크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사생아]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가장 수정을 많이 한 곡은 있어요. ‘Ahh... The Name is Otis, Baby!’라는 곡이고 세하님이랑 만들었거든요. 만드는 과정은 수월했고, 세하님이 보내주신 트랙 자체가 이미 끝내줬어요. 문제는 이 곡만 세하님이 프로듀싱을 하셨다 보니까 앨범 전체 사운드에 맞추기 좀 힘들었어요. 시행착오가 많았죠. 그래도 마지막에는 편곡이 잘 이루어져서 멋있게 나오게 되었습니다.
‘Ahh... The Name is Otis, Baby!’에는 “빨간 약 삼킨 애는 누구?”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그런데 제목에는 오티스의 이름이 들어가 있어요. 본인이 진실을 알게 됐다는 의미인가요?
음악이라는 게 사람을 담는 그릇인 것 같아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가 담기는 건데. 이전까지는 제가 사람들의 반응을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눈먼 채로 살았다면, 지금은 진정한 내 음악을 찾은 상태인 거예요. 진짜 음악이 무엇인지 사람들한테 들려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빨간 약을 삼키고 진실에 눈을 떴다는 가사를 쓴 거죠. 그리고 부치 콜린스 앨범 중에 [Ahh… The Name Is Boosty, Baby!] 라는 제목이 있어요. 이런 이스터에그도 넣어보고 싶었고요.
다음 트랙은 ‘의식[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라는 연주곡인데. 왜 19세가 붙었나요?
앨범 구성상 이 연주곡이 나오기 전까지는 텐션이 끝까지 올라가거든요. 그러다가 앨범 마지막으로 가기 위한 트랙이 필요했어요. 감정을 잘 연결해 줄 수 있는. 너무 처지지도 않으면서 펑크의 몽롱한 느낌을 잘 정리할 수 있길 원했던 거죠. 마약한 것 같은 사이키델릭한 느낌을 주고 싶었고 그런 의미에서 19금 표시를 달았습니다. ‘의식[자각]하지 못하는 상태’는 음가도 별로 없어요. 드럼, 베이스 위주로 가는 음악이죠.
‘요정’의 가사를 보면 다른 사람의 판단에 점점 자신감이 사라지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실제 오티스 림의 이야기인가요?
‘요정’은 제가 만든 곡은 아니고, 옴노스테레오가 만든 음악입니다. 앨범의 호흡을 정리해 줄 트랙이 필요했는데, 그에 어울리는 자기 인생사를 들려주더라구요. 저도 마음에 와닿는 이야기여서 이걸 노래로 만들어보자고 했어요.
얼마 전에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처음으로 <사생아>로 공연을 펼쳤죠. 10인조로 공연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펑크라는 음악은 음원이 아니라 라이브 무대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앨범 만들면서 라이브 편곡에도 시간을 굉장히 많이 쏟았고요. 아니나 다를까, DMZ 페스티벌 라이브에서 반응이 정말 뜨겁더라구요. 현장 반응도 좋았는데 무대 끝나고 좋은 피드백들을 많이 받아서 또 한 번 느꼈습니다. 이 음악은 라이브에서 완성되는구나. 뿌듯했습니다.
단독 공연이나 라이브 계획이 있나요?
아직 단독 공연 계획은 없고, 7월 24일에 채널1969에서 무대 하나를 합니다.
이번 앨범에 대한 만족도를 표현한다면요?
수치로 표현 못 합니다. 저는 그냥 꿈을 이뤘어요. 이 앨범의 점수, 평가가 중요하지 않아요. 저는 이 앨범을 통해 스스로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저 행복하고, 이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티스트 오티스 림으로서 기승전결 중 지금 어느 정도에 와있는 것 같아요?
‘기’ 정도에 와 있는 것 같아요. 이제서야 저를 찾았으니까요. 이제 시작인 거죠. 한 40년 정도 뒤에는 펑크를 전파하는 구원자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발견한 ‘진짜’ 오티스 림은 어떤 사람인가요?
정말 많이 생각해 봤거든요. 생각보다 저는 별로인 사람이더라구요. (웃음) 부끄러운 점이 참 많은데, 오히려 그래서 용기가 났어요. 내가 이만큼 부족한 사람이면 앞으로 더 나아질 게 있겠구나 싶어서.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지 않은 나를 노래할 때 재미도 있어요. 나는 이만큼 솔직해져 봤다는 해방감, 행복감도 있구요.
[사생아]를 통해 새롭게 펑크를 선보인 것처럼, 또 다른 장르나 스타일에 도전하고 싶은 게 있나요?
저는 음악을 워낙 많이 듣다 보니까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어요. 어떤 형식으로 누구와 컬래버레이션을 할 지 모르는 거니까. 저는 오늘 방송 오면서도 에티오피아의 한 피아니스트가 연주하는 클래식을 들으면서 왔어요.
아티스트로서 그리고 인간 임호승으로서 어떤 계획들이 있나요?
오티스 림으로서는 그냥 앞으로도 누구 눈치 보지 않고 제가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그런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임호승으로서는, 큰 계획이 하나 있어요. 제가 10월에 풀 마라톤을 한번 나가보려고 합니다. 달리면서 배우는 것들이 많거든요. 건강이 중요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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